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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Jun 10. 2022

밀당의 귀재도 어긋나는 작전

감정선의 일방적인 옳고 그름은 없다

밀당의 귀재도 어긋나는 작전


온갖 노력을 해도 안 되는 사이가 있는가 하면, 굳이 노력을 안 해도 원활한 관계가 유지되는 사이도 있다. 물론 이도 저도 아닌 사이도 있다. 특별한 액션을 취하지 않아도 그런대로 잘 지내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10번을 잘해도 1번의 부딪힘으로 관계가 매번 초기화되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다양한 방법으로 내 마음을  표현해도 상대방은 내 입장이 아닌 본인의 기준에서만 끝까지 생각하려고 하면 대화는 더 이상 의미가 없을 때가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감정이 상하기 전에 딱 한번 나의 고집을 꺾으면 될 것을, 나는 그게 뭐라고 당장에 놓인 상황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억울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직장 상사를 향한 단 한 번의 반항에 대한 파장은 어마 무시할 것이고 둘 중 한 명이 그만두지 않는 이상 남은 회사생활이 계속해서 끊임없이 괴로워질 거다. 군대 선임한테 덤비는 날에는 영창 혹은 완전군장으로 끝나지 않을 거다. 선임이 제대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군생활 내내 중대 내에서 고문관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가 상하 간 지시 복종의 관계가 아니고서야 일부러 다 맞추고 살 필요는 없다. 그건 상대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위의 상황에 놓일 때마다 이런 생각을 것이다.


"바깥에서 만나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게"


아닌가?


어느 집단에 속해있는 이상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나에게 가까운 쪽으로 당기려고 때로는 부질없는, 의미 없는 노력을 한다. 반대로,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타인이라 할지라도 관계는 새롭게 적용이 될 수도 있다. 남자의 자존심은 타인과의 어깨빵에서 시작된다고 했던가. 잘 달리고 있는 차선 앞에 난데없이 나타나 갑작스럽게 칼치기당했을 때의 분노는 누구나 다 같으리라 생각된다. 관계란 꼭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과의 한정적인 의미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내가 놓인 상황에 함께 하고 있는 모두가 해당된다.


인간관계는 상대방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나는 성격상 처음 인연을 맺게 되는 관계에 놓인 사람들과 빨리 가까워지는 것을 되도록이면 피하고자 한다. 나이가 들면서 더 조심하는 게 사람을 알아가는 나만의 속도이다. 나는 가까워졌다고 생각해도 상대방은 아직 아닐 때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빨리 친해져서 오히려 편해지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천천히 알아감으로써 편해지는 관계가 있다.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해석이 아닌 정말 사람대 사람으로 생각했을 때, 관계의 기준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사람의 마음을 책으로 배워서 바로 적용시킬 수는 없다. 그랬다간 대부분의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 되어버린다. 사람 마음은 절대로 책에 쓰여 있는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관계에 관한 책을 완전히 기준 삼아 살았다가는 큰 낭패를 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성공사례들 중 하나를 통해서 지혜를 배울 수 있을 뿐이지, 내가 살아온 환경에 의한 것이 아닌 타인의 인생에 대한 기준이다. 이처럼 사람과의 관계는 수학공식처럼 정확한 값이란 게 존재할 수가 없는 게 아닐까. 한평생 마주치는 다양한 관계에 의한 경우의 수가 너무나도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아무리 다양한 경험에 의한 이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매번 다른 공식과 예상 값을 대비해야 한다. 그래도 쉽지 않은 게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


[감정이 복잡하고 정리가 안될 때에는 산책만큼 좋은 것도 없는 듯하다]


옆에서 봤을 때 매번 죽일 듯이 싸우 거면 차라리 절교가 답일 것만 같은 관계 같은데도 술 한잔에 쉽게 풀리는 사이가 있는가 하면,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 없이 지내다가도 의견 하나 맞지 않았다고 며칠, 심지어 몇 달을 연락도 안 하고 지내는 사이도 있다.


친구관계도, 형제 관계도, 심지어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라 하더라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말이 통하지 않는 관계가 있다. 너무나도 끊고 싶은 관계가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이가 있지만 어디 그게 마음처럼 쉬울까.


내 앞에서 감정적으로 불을 지피는 사람한테는 맞불을 피워봤자 더 피곤해질 뿐이다. 오히려 무관심이 답일 때가 있다. 자주 연락함으로써 부딪힐 사이라면, 횟수를 줄이면 된다. 감정적으로 나를 건드릴 사람이라면 더 거리를 두면 된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감정적으로 무너지게 되면 그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다. 사람으로 인한 감정의 상함은 생각보다 회복하는 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평생 시달리며 남게 되는 고통이라는 감정의 무게는 운동으로도, 다이어트로도 빠지지 않는다. 몸속의 지방보다 없애기 어렵고 좋은 기억보다 더 지배적인 것이 사람에 의한 감정적인 상함이다.


피곤한 관계를 피하고자 평소에 조용히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일이 모든 상황에 반응하며 어떻게든 내가 감정적으로 혹은 우겨서라도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 우리 인간은 평소에 나만의 기준으로 세워진 자존심이라는 큰 성벽을 쌓아두고 살기 때문에 나를 건드렸을 때 비로소 내가 평소에 어떤 성격인지 상대방을 통해 비치게 된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지만 감정적인 격돌은 곱절에 또 곱절이 되어 때론 눈물로, 때론 폭언으로, 때론 마음에도 없는 상처의 말들로 서로에게 메아리치게 되어 일종의 백색 소음 | White Noise을 일으키게 된다.


일 년에 한 번 겨우 연락하는 사이라 할지라도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사이도 있다. 그게 나와 상대방이 무의식 중에 약속한 관계인 셈이다. 인위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대로 유지하는 것 자체가 노력일 것이다.


나하고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에게 억지로 가까워지려고 할 필요 없다.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 일단 반 이상은 성공이다. 감정선의 줄다리기에서 서로 자신에 가까워지려고 있는 힘껏 당길 필요 없다. 상대방이 살짝 당기면 한걸음 가보고, 내가 당겼을 때 상대방이 힘을 쓰지 않는다면 조금 더 당겨보면 된다. 다시금 줄이 팽팽해진다고 느껴지면 내쪽에서 힘을 빼면 그만이다.


관계 유지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 다만 쉽지 않은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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