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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May 30. 2022

아내가 나를 의심한다

해프닝으로 허무하게 끝난 아내의 의심

아내가 나를 의심한다


아침부터 아내가 반지를 찾는다. 늘 같은 자리에 두는 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내와 나, 이렇게 둘만 사는 집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내가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도대체 왜?라고 생각도 되었지만 우리 부부에게 일어난 그날을 생각하려니 웃음부터 나온다.


사건의 전말 이렇다.


어느 휴일 아침 우리 부부에게 정말 흔치 않은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간만의 휴일에 오전 커피를 마시기로 했는데, 아내는 그전에 잠시 집 정리 간단한 청소를 하고 나가자고 했다.

평소에 이곳저곳 출강을 하느라 집에 없는 날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아 오던 아내를 대신하여 청소기를 열심히 돌리기 시작했다. 음악 작업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꼼꼼함이 부족한 나였지만, 이날만큼은 곳곳을 누비며 열심히 청소에 임했다.


거실을 시작으로 소파 밑을 지나 텔레비전 근처, 베란다 문 사이사이를 최대한 깔끔하게 하고 아내의 업무 및 작업용 책상이 있는 안방으로 청소기를 끌고 갔다. 안방에 들어서자마자 아내의 책상에 한번, 침대에 몇 번, 바로 옆의 책장에 몇 번, 벽은 아예 대놓고 쿵쿵대며 청소기를 돌렸다. 하기 귀찮아서가 아니다. 방금 오해한 사람들은 제발 그런 거 아니니까 나를 향해 찌푸린 눈살을 거둬주길 바란다. 변명을 하자면, 청소를 할 때의 나는 조금 부주의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곳곳에 청소기를 부딪히기가 일쑤였다는 내 얘기를 들어주길 바란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내에게 집안일을 모두 짬 시키는 그런 몰상식한 남편은 아니다. 지 물건을 다룰 때 조심성이 부족할 뿐이란 걸 알아줬음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청소를 마치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으며 콧바람을 흥얼거리며 평소보다 들떠 있던 나는 아내에게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 보통 청소에 걸리는 시간은 세상 모든 아내들에 비해 남편들이 빠르다. 군대에서 하던 점호 청소의 습관 때문인지 깔끔 보다는 청소를 했다는 표시가 나는 거에 의미를 두는 편이었다. 아무튼, 평소 같으면 이미 준비가 끝났을 아내는 여전히 안방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이유는, 반지가 없어졌다며 안방 곳곳을 뒤져보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 책상 위에 두던 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


같이 찾아보던 우리는 혹시나 다른 곳에 두지는 않았을까 집안 곳곳을 살펴봤지만 금방 나올 리가 없었다. 집을 통째로 뒤집어서 흔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집안 어딘가에는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우선 나갔다 오기로 했다. 나 혼자 반지를 끼면 미안했기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고 외출을 나섰다. 바깥에 있는 내내 아내는 반지가 원래에 있어야 할 자리에 왜 없는지 답답해하기만 했다. 평소에도 작은 물건 하나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내였기에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아내에 의하면 분명 전날 늘 같은 자리, 책상 위에 두었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우리는 아침부터 책상 근처에 무슨 일이 있었을지를 정리해 보기로 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분명히 책상 위에 있었다고 확신한 아내는 내가 청소하면서 청소기로 책상을 치고 지나간 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까 하며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름의 이유 있는 아내의 의심 가득한 눈빛에 나는 지방살에 파묻힌 미세한 촉각에 까지 최대한 살려가며 도대체 아침에 내가 무슨 짓을 했을지 생각을 쥐어짜 내려했다.


아내 이렇게 말이 빠른 줄 잊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발음이 정확했다.


혹시 청소기 책상다리를 치고 지나가면서 반지가 떨어지지는 않았을까?


혹시 떨어지면서 청소기가 반지를 빨아들이지는 않았을까?


책상 위에 있던 반지가 그냥 없어졌을 리가 없는데 정말 못 봤어?


반지가 떨어졌으면 소리가 들렸을 텐데 못 들었어? 잘 생각해봐.


내 생각에는 청소하면서 책상을 치는 바람에 반지가 어디론가 떨어졌을 거 같아. 그렇지 않고서는 원래 자리에 있어야 할 반지가 없어질 리가 없지 않겠어?


급한 마음에 외출을 짧게 마치고 돌아온 우리는 다시 온 집안을 집기 시작했다.

내 잘못이라는 생각에 눈을 부릅뜨고 열심히 찾았다.

아내는 안방을, 나는 온 집안을.


안방 곳곳을 몇 번이나 확인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나오질 않자 아내는 속상해 하기 시작했다.


청소기가 책상을 쳤기 때문에 반지가 떨어졌다는 가설을 일단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에 나름의 시뮬레이션을 선보였다. 타임 스톤(마블 영화에 등장하는 인피니티 스톤 6개 중 하나이자 내가 가장 갖고 싶어 하는 력이다)의 능력치를 최대한 살린 것 같은 상황을 반복하며 아내를 이해시키고자 했다. 책상 위 같은 곳에 다른 반지를 올려놓고 청소기로 똑같이 책상다리를 몇 차례 드렸다. 웬걸? 반지는 미동조차 없었다. 좀 전의 가설의 중심에 있던 나에 대한 의심이 줄어들었나 싶었지만 그래도 책상에서 떨어졌을 거다는 의심은 여전했기에 책상과 같은 높이에서 반지를 인위적으로 몇 차례 떨어트렸다. 어디론가 굴러갈 줄 알았던 반지는 떨어진 그 자리에 얌전히 안착되기만 했다.


그럼 도대체 반지가 어디 있는 거지? 우리 말고 이 집에 누가 사나? 바깥에서 잃어버린 게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아내는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듯했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오 하나님 제발.


잠시 숨을 돌리고 소파에 앉아서 하나님께 기도해 보라고 했다. 가끔 그럴 때 들어주신다고 했더니 그런다고 나오겠냐며 아내는 웃었다. 웃는 아내 보니 아직은 희망이 있보였다. 아내의 기분을 달래며 무겁고 크기만 한 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에게 설마 이런 곳에 있겠어? 하는 곳에 나올 때가 있다며 위로를 하고자 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평상시에 자주 책상 위에 두었다는 생각 때문에 기억이 조작될 수도 있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다고.


방금 전 다시 꽂아 넣은 책들을 하나둘씩 다시 꺼내 든 아내는 거의 포기하는 상태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기왕 이렇게 된 거 티**에서 하나 새로 해야지 어쩌겠어.

안 그래도 하나 맞춰야지 하고 있었거든.

어쩔 수없지 뭐. 

 

진심 같았다. 더 열심히 찾았다.


그러던 도중, 아내가 책장에서 집어 들은 책에서 반지 하나가 굴러 떨어졌다.

아내는 반지를 찾아낸 기쁨보다는 티**에서 새로 맞출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며 크게 아쉬워했다.

진심 같았다.


아침에 일어난 해프닝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고, 나는 다음 기념일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무엇보다도 있을 때 잘해라 라는 교훈이 문득 생각면서 반지를 좀 더 소중히 다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는 하루였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학교 수업 때 쓰는 usb를 집안에서 잃어버렸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이것 또한 기억의 조작인지 청바지 오른쪽 호주머니에 늘 넣고 다니던 usb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리라도 달렸는지. 잘도 숨은 것 같더라.

나타나기만 해 봐라. 무시무시한 양의 파일로 배 터지게 채워주겠다는 다짐을 했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괜한 협박을 했나.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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