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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소세지

공복에 산책은 위험하다

by Gigantes Yang

누가 봐도 소세지


아침 8시. 졸린 눈을 겨우 뜬다.

날씨가 화창하다.

매일 같은 로테이션으로 냉장고로 향한다. 이 시간만큼은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여기저기 몸을 부딪히게 된다.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신다.

안경을 쓴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근처 호수로 향한다.


평소에 즐겨 듣는 라디오를 벗 삼아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풍경.


내 눈을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정확한 명칭은 모르지만 '부들'이라고 불린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소세지가 아니면 무엇이냔 말인가]


소세지로 만끽할 수 있는 온갖 음식들이 눈앞에서 한 편의 영화처럼 스쳐 지나다.

핫도그.... 핫바.... 소세시 케첩 볶음... 부대찌개...


공복에 산책은 정말 위험하다.


그렇다고 실내에서는 안전한가

그렇지 않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자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삼겹살.... 보쌈.... 족발.... 김치찜....

몸에서 땀이 흘러 내는 걸 보고 있자니 수육도 빼놓을 수가 없다.

어렸을 적 집에서 김장을 할 때면 어머니께선 5천 원을 손에 쥐어주시면서 하시는 말씀,


"정육점 가서 수육 좀 하게 돼지고기 달라고 하렴."


그 당시에는 수육 5천 원치면 모두가 배불리 먹을만한 양이었지만

지금은 택도 없는 가격이다.


음식을 보면 환장하진 않는다.

음식을 보면 정신을 못 차릴 뿐이다.

특히 공복에는 더.

그게 그건가.


사진을 찍고 보니 작은 잠자리 한 마리가 공짜로 모델해주겠다며

멋진 날개 자태를 펼쳐 보였는데

그 마음도 몰라본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


그래도 누가 봐도 소세지다.






*국어사전에는 소시지가 표준어로 적혀있지만 비표준어로 분류되는 소세지에 왠지 더 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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