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당선,합격,계급>
다름이 존중되아야 한다. 다르다는 건 원래 불편하다. 다름을 인정하고 이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해는 원래 정신적 소모가 큰 활동이다. 하지만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의 장단점을 보완할 수 있고,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요즘 세상은 유별난 소수가 다수의 삶에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시대다.
과연 우리나라는 이러한 시대 흐름을 따라갈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까. 아직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한국이라는 눈치 사회에서 다르다는 의미는 곧 눈치가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에서 눈치란 기획, 창의성, 문제 해결과 관련된 영역이 아니다. 다만 그저 누군가의 편안함을 지켜주는 행동, 예를 들어 상급자의 의중을 살피는 일차원적 공감에 머문다.
책 <당선,합격,계급>에 따르면, 우리나라 취업 시장의 공채제도는 다름이 아니라 평범함에 보상한다. 공채제도는 균질한 수준의 인재를 뽑게 해 준다는 뚜렷한 장점이 있지만, 특정 분야에 뛰어난 스페셜리스트들을 배제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나는 스페셜리스트가 공채에서 걸러지는 데에 그들의 눈치 없음이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페셜리스트들은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게 눈치 없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 소신이 뛰어나 주변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거나, 혹은 그쪽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다른 이의 평가를 귀담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분명 누군가의 기분을 편안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은 자기 분야에 특출난 능력이 있으며, 그것이 세상에 이롭다는 점이다.
개인적 경험을 돌이켜봐도 우리 사회는 평범하지 않은 이를 걸러내는 구조가 공고한 것 같다. 그들이 일상에서 승리한 적이 별로 없다. 오히려 그들을 미워하는 경험만 많이 하게 된다. 군대에서 그들의 존재는 불편했고, 평범한 다수의 평화를 종종 망가뜨렸다. 하지만 다수의 평화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편안함은 현상에 안주하는 경우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는 불편함을 통해 성장한다. 그들에게 자신의 의견이 존중될 수 있도록 사람과의 일정한 거리와 그 의견을 발전시킬 수 있을 만한 어떤 공간이 제공됐다면. 평범한 다수와 유별난 소수의 상생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구조의 문제를 너무도 쉽게 개인의 문제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스페셜리스트들에게 보다 우호적인 환경과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들이 자신의 장점을 살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그들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적어도 지금 처럼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두지는 말자는 것이다. <당선,합격,계급>에서 언급된 공채제도의 개선은 그 변화의 시작이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