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머리를 땋아 주던 날
엄마가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지 두 달 즈음이다. 발목 바깥으로 튀어나와 있는 4개의 나사를 빼기 위한 수술시간이 다가왔다. 병실문을 열고 들어온 간호사는 노란 고무줄 2개를 보호자인 내게 건넸다. 머리를 양갈래로 땋아서 묶어야 한다며... 양갈래 묶기는 수술 전에 머리카락이 긴 환자들에게 필수 과정이다. 보호자 의자에 앉아있던 나는 노란색 고무줄 두 개를 간호사에게 건네받았다.
이제는 백발이 되어 버린 엄마의 머리. 유치원 가는 딸아이의 머리를 따아주듯 양갈래의 비율이 딱 맞게 실력을 발휘해 볼 시간이다. 정수리부터 가르마를 타려고 검지 손가락을 엄마의 정수리에 가져갔다. '앗... '가르마를 타려고 올린 나의 검지손가락이 큰 역할을 할 만큼 더 이상 엄마의 머리카락이 수북하지 않았다.
잊고 있었다. 늘 밝고 건강했던 엄마도 세월의 흐름만큼 멀리 와있다는 걸. 마치 이젠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순간이 왔음을 알려주는 알람 같았다. 수술하는 환자의 보호자가 아닌 '엄마'라는 여자의 남은 인생의 시간 속 보호자. 엄마가 그랬듯 나는 엄마를 그 귀한 사랑으로 보호해 줄 수 있을까? 두피가 훤히 비치는 빈 정수리에 살색이 드문드문 드러나 보였다. 엄마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다 느끼는 울컥함이란... 두피가 훤히 비치는 빈 정수리에 엄마의 지난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같다.
사랑스러운 막내딸이던 내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어릴 적 사랑스런 미소로 내 머리를 땋아준 엄마 모습처럼 이젠 수술실에 들어가는 엄마 머리를 내가 땋아준다. 머리숱이 확연히 줄어든 탓인지 엄마의 양갈래 머리는 생각만큼 탄탄하게 꼬아 내려가지 않았다. 사실은 엄마의 빈 정수리에 멈춰버린 시선 속에 엄마의 지난 삶이 떠올라 울컥함을 참아내느라, 애써 태연한 척하느라 솜씨를 발휘하지 못했다.
손재주가 좋은 우리 엄마는 늘 나를 예쁘게 귀하게 키웠다. 예쁜 딸이라고... 그러니 예쁘게만 자라라고... 1년 365일 일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나에게 짜증이나 싫은 내색을 하지 않은 엄마다. 실수 투성이인 나에게 말이다. 고단한 하루 속에서도 그저 곱고 예쁘게 키웠고, 엄마의 정성만큼 나는 국가 행사 무대에 올랐으며 예뻤고 빛났다. 엄마에게 단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은 한 적은 없지만, 나는 안다. 오늘의 나는 엄마의 수고였고, 사랑이었고, 정성이었음을.
'엄마' 세상에서 제일 애틋한 사랑. 더 늦기 전에 마음껏 표현해야 하는데 되려 짜증만 내고 마는 막내딸은 뒤돌아 후회하곤 마음이 시리다. 짜증 내는 내 모습마저 늘 미소로 품어주는 엄마 사랑의 크기만큼 내 맘이 시리다. 엄마라는 이름의 무한한 희생과 끈기로 이루어진 그 흔들림 없는 사랑은 딸의 삶에 영원한 안정과 힘을 전해준다는 걸 엄마는 알고 있다. 엄마는 지금 내게 사랑을 가르치고 있다. 늘 그렇듯 온화한 미소를 품은 '사랑'이라는 무언의 가르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