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하람 Jan 15. 2024

비행기바라기

겨우 비행기 하나

살면서 비행기를 타본 일이 거의 없지만 멀리 날아가는 밤 비행기를 보는 걸 좋아한다. 학창 시절에 우연히 OCN에서 봤던 할리우드 영화가 있었다. 초반부에는 밤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들이 여행, 비즈니스 등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날아가는 비행기의 조용한 내부가 나온다. 별 거 아닌 그 고요한 장면은 당시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보지 않았던 나까지 설레게 만들었다. 물론 도입부에서만 평화롭게 비행하지, 영화의 주요 내용은 비행기 납치범과 그를 막으려는 주인공의 유쾌한 한 판 승부를 그리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내 어딘가에는 그 도입부의 잔잔한 평화로움이 꽂혀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밤에 멀리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면,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목적으로 비행기를 탔을지, 어디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지, 비행기를 타는 마음이 얼마나 설렐지 내 멋대로 상상한다. 그 상상을 통해 밤 비행기를 타고 있는 승객들의 평화로운 설렘을 블루투스처럼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릴 때 봤던 그 영화 속의 평화로운 비행기 내부의 장면이 펼쳐진다.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가는 20대의 젊은 사람들, 비즈니스를 위해 양복을 빼입고 멍 때리고 앉아 있는 40대 비즈니스 맨, 여행을 마치고 다시 본국으로 귀국하는 사람들이 타고 있는 밤 비행기는 아직은 조명이 밝지만 밤이 깊어지면 전체 조명이 꺼지면서 어두운 고요 속으로 날아갈 것이다. 그렇게 비행기가 시야에서 멀어지고, 상상의 비눗방울이 터지면, 해외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처럼, 나도 하던 일을 계속한다.

이것은 아주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언제 어디서나 일상을 탈출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다.

작가의 이전글 쾌락의 닭강정 파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