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하람 Jan 19. 2024

금붕어의 세상

겨우 금붕어 하나



  친구네 집 현관문을 들어서면 커다란 어항이 있었다. 조명으로 빛나는 어항 안에는 수초들과 여러 마리의 금붕어들이 잘만 돌아다닌다. 어항에 손가락을 갖다 대면 물고기들이 몰려온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금붕어는 머리가 나빠서 어항에 손을 대면 먹이를 주는 줄 알고 온다고 한다. 어항에 먹이를 살살 뿌리면 뿌리는 방향을 따라 물고기들이 몰려온다. 물고기 밥만 있으면 어항의 마에스트로가 될 수 있다. 어항은 금붕어의 세상이다. 어항만큼의 세상을 살고 있는 붕어는 딱 어항만큼만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금붕어를 하찮게 여기지만 우리도 금붕어를 딱 어항만큼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금붕어가 어항 출신이라고 생각한다. 금붕어를 떠올리면 어항 속의 금붕어밖에 떠올리지 못한다. 그렇지만 도대체 처음부터 어항에 살고 있는 물고기가 어디에 있겠는가.


  금붕어의 원산지는 양쯔강 하류 항저우 지역이다. 원래는 비좁은 어항이 아니라 거대한 강을 헤엄치고 다녔다. 수명은 30년에서 40년 정도라고 한다. 생각보다 길지 않은가. 우리가 짧게 생각한 이유는 어항관리를 제대로 안 해서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금붕어의 기억력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있다. 2003년 플리머스 대학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는 금붕어가 학습을 통해 빠져나올 수 있고, 2개월이 지나도 그 길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2012년 Behavioral Process 저널에 발표된 연구와 전기충격 실험 등은 우리가 금붕어를 어항 속에서만 보았기 때문에 생긴 오해였을 뿐이다.


  우리는 여태껏 우리가 본 것만으로 금붕어를 판단해 왔지만 금붕어는 훨씬 더 넓은 세계를 헤엄치고 다니고 있었고, 지적 능력도 훨씬 더 좋았다. 금붕어뿐이랴. 우리는 어쩌면 수많은 것들을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항은 금붕어의 세상이 아니라 우리 사고의 틀이었던 것이다. 금붕어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모든 것의 단면만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 우리의 사고가 어항에 갇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비행기바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