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나의 힘
30살이면 자산이 얼마나 있어야 하나요?
모두가 한 방향으로 달리면 순위와 서열이 생긴다. 나는 어디쯤 있을까? 달리다보면 스스로의 위치가 궁금해진다. 네이버 검색창에 ‘30살’이라고 입력해보니 ‘30살 1억’, ‘30살 연봉’, ‘30살 자산’, ‘30살 백수’ 따위의 자동완성 단어들이 완성된다.
“30살에 1억 만들면 늦은 건 아니죠?”
“30살에 연봉 5천이면 평균 이상인가요?”
“30살이면 자산이 얼마나 있어야 평균인가요?”
“30살에 백수여도 괜찮은가요?”
30살이면 어디쯤에 있어야 하는지 세상의 기준에게 묻는 것이다.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답변을 들으면 불안하지만 기준을 무시할 필요는 없다. 세상의 기준 따위 무시하고 나만의 기준을 세우라는 이야기는 너무 무책임하다.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은 항상 세상의 기준에서 우위에 있다. 위선이다. 사회적 동물로 살면서 사회적 기준을 따르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남들보다 느려서 불안을 느끼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나만의 속도로 열심히 페달을 밟으면 된다. 올바른 방향이 아니어도 괜찮다. 잠깐 멈췄다가 키를 틀어 돌아가면 된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달리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가속도가 붙는 날이 올 것이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동안 배운 것들도 언젠가는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불안이 찾아온다. 그걸 연료로 쓰면 된다. 불안이라는 장작을 불 안에 던짐으로써 원동력을 불태울 수 있다. 그렇게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향으로 매일 조금씩 가다보면 언젠가는 사회적 기준이 신경 쓰이지 않는 날이 온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뒤늦게 대학에 입학했을 때 스무 살이었던 동기 한 명이 나한테 이런 얘기를 했다.
“지코랑 수지가 형보다 어리지 않아요? 얘네는 돈 벌어서 부모님 집사줬다는데 형은 뭐했어요?”
강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도 많은 얘기들을 들었다.
“강사하려면 학벌이 좋아야 하는 거 아닌가?”
“자네는 재능이 없어보이는데 그냥 공무원 준비나 하지?”
“역사? 역사는 전망이 나쁜데 아직 어리니까 지금이라도 수학으로 갈아타지 않고?”
이와 같은 얘기들을 듣다보면 불안감이 증폭되어 좌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불안한 만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달렸다. 그 과정에서 위기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적어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다. 불안을 느낄 때마다 매번 원동력으로 바꾸다보니 언젠가부터는 불안도 잘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저 내가 있는 곳에서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만의 속도로 노 저어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