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통조림 하나
김치찌개를 끓일 때는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끓이면 훨씬 맛있다. 그렇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는 돼지고기를 김치찌개에 넣는 것은 사치였고, 대신 캔 참치를 넣은 참치김치찌개가 최선이었다. 비록 국물에서 돼지고기의 고기기름이 우러나오지 않는 것은 아쉬웠어도, 참치라도 건져 먹을 건더기가 있는 김치찌개는 김치만 들어간 찌개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뜨거운 국물에 부드러워질 대로 부드러워진 참치 속살을 얼큰한 국물과 함께 숟가락 위에 올려서 '후르릅'하고 마시면 그대로 나의 일부가 된다.
통조림 참치는 김치찌개에만 들어가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집에서 혼자 끼니를 때워야하는 때가 많았는데 별 생각 없이 열어 본 선반 안에 참치 통조림이 발견되면 보물찾기에서 숨겨놓은 쪽지를 발견한 것처럼 설레곤 했다. 그렇게 발견한 참치는 취향에 따라 조리되었는데, 대접에 밥을 퍼서 그 위에 부드러운 참치 속살을 올리고 고추장과 참기름으로 양념을 해서 비벼먹는 것도 별미였고, 아니면 매일 먹던 라면을 끓일 때 참치 한 캔을 따서 냄비에 기름까지 투하하면 그것 또한 색다른 맛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선반 안에 등장하는 참치 통조림은 매일 반복되는 밥상을 조금이나마 다채롭게 해주는 이벤트 같은 존재였다.
성인이 되고 다양한 음식을 접하고부터는 더 이상 참치 캔을 찾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김치찌개를 끓인다고 해도 돼지고기를 넣고 싶은 만큼 넣어 먹을 수 있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선반을 열어볼 일도 없다. 그렇지만 겨우 참치 통조림 하나에도 행복해하던 그 시절은 돼지고기 천근만근을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