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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하람 Jan 20. 2024

전화부스가 부리는 마술

겨우 공중전화 하나

 공중전화부스는 신기한 장소다. 한쪽 여닫이문을 당겨서 열면 우당탕 하면서 문이 열린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닫으면 외부세계와 물리적으로 완전히 단절된 작고 아늑한 세계에 입장하게 된다. 한 평도 되지 않는 직육면체의 세계는 문을 닫는 순간 현실과 단절되어 버리고, 나만의 작은 공간을 선사한다. 좁은 직육면체 안에 갇혀 있어도 무섭지 않은 이유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문을 열고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에 입장해서 투박하게 생긴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넣으면 단절되지 않는 긴 신호음이 들린다. 전화를 걸어도 된다는 허락이다. 아라비아 숫자 버튼은 쇠로 되어 있어 딱딱하지만 생각보다 부드럽게 눌린다. 전화를 걸면 짧고 반복되는 신호음이 들린다. 그러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여보세요?”라는 말이 들리면 좁은 직육면체 세상 속에는 나와 전화를 건 상대방 둘만이 같이 있게 된다. 실제로 같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안에서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샌가 상대방과 내가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나면 기계음이 들리면서 상대방은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사라지고, 수화기를 내려놓는 철컥 소리와 함께 전화부스 안에는 다시 나 혼자만 남게 된다.

  전화부스는 외부와 단절되어 있지만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기 때문에 밖이 잘 보인다.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도 자동차들은 잘 달리고 있고, 가로등 아래에는 두꺼운 외투를 동여맨 채 눈발보다 하얀 입김을 내쉬며 지나가는 사람이 보인다. 이제 투박한 문을 열고 나가면 나도 다시 일상의 현실로 돌아온다. 요즘은 누구나 전화기를 하나씩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굳이 전화부스 안에 들어가서 위의 과정을 거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공중전화부스는 점점 보이지 않는다. 가끔 보이는 전화박스는 가로등 빛 하나 받으며 쓸쓸하게 서있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을 둘만의 공간으로 부르는 마술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공중전화만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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