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후 집을 찾아보다.
귀농을 결심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끝이 없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질문이 하나 더 있다.
농촌 인구 감소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막연히, 집 구하는 일쯤은 어렵지 않겠지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서울에 있을 때, 네이버 부동산이나 여러 앱들을 통해 문경 쪽 매물을 검색해봤다. 그런데 정말, 눈을 의심할 만큼 매물이 없었다. 너무 없어서 이게 혹시 부동산 앱 오류가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문경에는 부동산들이 주로 사용하는 별도의 포털이 있다는 걸. 2000년대 초반의 디자인을 간직한 그 사이트에는, 오히려 꽤 많은 매물들이 올라와 있었다. 어쩌면 이런 정보의 비대칭이, 도시와 농촌 사이의 거리보다 더 큰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고향이라지만, 발로 뛰지 않고는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빈집은 많은데, 매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자녀들이 도시로 떠난 뒤에도 고향집을 마음의 안식처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집을 남겨두는 건, 언젠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을 포기하지 못해서다.
가끔 매물로 올라온 집들도, 막상 부동산에 연락해보면 “상속 문제로 아직 정리가 안 됐어요.” 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누군가는 집을 팔자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반대하거나 매매금액을 두고 갈피를 잡지 못한 상태.
어쩌면 그런 이야기들이 시골 마을에 쌓이고, 시간이 멈춘 듯한 집들이 모인 풍경을 만들어낸 건지도 모르겠다.
지방마다 인구 소멸을 막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있다. 그중 하나가 귀농·귀촌인을 위한 ‘살아보기’ 주택이다.문경도 마찬가지였다.
문경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시골 마을의 기존 주택을 1년간 무상으로 빌려주는 방식, 다른 하나는 시에서 새롭게 지은 경량철골조 주택을 월 5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임대하는 방식이었다.
경량철골조 주택은 깔끔했고, 단지형이라 비슷한 처지의 귀농인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시골 마을의 ‘귀농인의 집’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 집엔 이삿짐을 다 넣을 수 있었다. 경량철골조 주택은 깔끔했지만 작았다.
세탁기, 침대, 옷장, 책상, 책장, 식탁...
우리가 도시에서 쓰던 물건 대부분은 넣을 수 없었다. 거실은 작고, 방도 하나뿐. 욕실도 하나. 사실상, 본격적인 정착보다는 잠시 머무는 집에 가까웠다. 우리는 아직 정착할 집을 마련하지 못했기에 조금은 오래됐지만, 더 넉넉한 공간을 가진 시골집이 필요했다.
그 집은, 귀농의 첫발이자 농촌이라는 공간에 적응하기 위한 첫 번째 선택이었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었지만, 집은 흙으로 지어졌고 그 위에 시멘트를 덧발라 보강해놓은 상태였다. 별채로 이어지는 구조는 예스러운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집 앞에는 샘이 있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얼지 않는 샘.
이 마을을 샘골이라 부르는 이유였다. 이름대로, 물이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옆집 어르신이 나중에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옛날엔 다른 마을에서 우물 팔 때 이 샘물 떠다 놓고 기도했어. 물이 잘 나오라고…”
이 집은, 1년만 지내는 임시 숙소다.
그런데 벌써, 정이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