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이 편해진 순간
귀농을 하고 나서 가장 먼저 달라진 건, 배달음식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상에서 배달음식이 ‘없어졌다’.
도시에서는 배달음식이 생활의 일부였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냉장고를 열기 귀찮은 날, 퇴근시간이 길어져 저녁 시간이 애매해진 날, 비가 오거나 마음이 축 처진 날에도 휴대폰 몇 번 두드리면 따뜻한 음식이 문 앞에 도착했다.
배달은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 중 하나였다.
귀농 후 지금 사는 곳은 편의점 하나 없는 시골마을이다 보니 그게 잘 작동하지 않는다. 배달앱을 열었을때, 배달이 가능한 음식점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지금은 배달앱을 지운지 오래다.
결국 선택지는 단순해진다.
직접 해 먹거나, 미리 사 두거나, 아니면 그냥 안 먹거나. 이 단순한 선택지가 생각보다 많은 걸 바꿨다.
무엇인가 먹고 싶을때는 항상 픽업 주문을 하고, 집에서 차로 20~30분 열심히 달려가면 음식이 나옴과 동시에 픽업을 해서 집으로 가져와서 먹는게 일상이다. 하지만 이것도 한두번이지 매번 뭔가 먹고싶을 때마다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주 번거로운 일이다.
배달 없는 삶은 농사와 닮아 있다. 버섯은 기다림의 결과물이다. 아무리 서둘러도 환경이 맞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습도, 온도, 공기, 시간.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조건을 맞추고 기다리는 것뿐이다. 원하면 바로 얻는 구조가 아니라, 준비하고, 생각하고, 때로는 포기하는 구조다.
배달이 없는 삶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묘하게 나를 현재로 끌어당긴다.
배달이 있을 때는 배고픔과 허전함이 곧 주문으로 이어졌다면, 지금은 찾으러 가야한다는 불편함 때문인지 그 시간 동안 생각하게 된다.
정말 배가 고픈 건지, 그냥 습관인지, 아니면 쉬고 싶다는 신호인지. 등 배달 없는 삶은 생각과 기다림을 다시 배우는 일 같기도 하다. 배달이라는 선택지가 없으니 일상에서 일어나는 매우 빈번하고 사소한 선택일수 있는 배달 음식을 고르는 일을 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그런점에서는 편안함도 느껴진다.
만약 도시로 돌아가면 나는 아마 다시 배달을 시킬 것이다. 편리함을 아는 사람은 그걸 완전히 끊기 어렵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배달이 없어도 삶은 돌아간다는 걸. 조금 느리게, 조금 불편하게, 대신 내가 먹는 것과 사는 방식을 조금 더 의식하면서.
시골에서의 삶은 배달이 없는 대신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 생각들이 나를 조금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도 요즘은 느끼고 있다.
15년차 마케터였고, 지금은 농부입니다. "마흔즈음에 부부가 같이 귀농해 농사를 짓고 있어요. 귀농해서 경험하고 있는것을 공유하고 싶어요. 매주 업로드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