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켜낸다는 것] 책을 읽고 쓰는 이야기
바꾸어 말하면 일을 성취하기 위해 심신의 건강을 손상시키면 설령 더 큰 성취를 얻더라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신경쇠약이나 심신 피로에 시달리며 아침에 저녁을 장담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힘든 삶을 살고 있다면, 이는 처음의 바람과는 어긋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옛사람들은 이를 ‘편집(偏執)’이라고 하고 반드시 ‘집착을 버리라(去執)’고 가르쳤습니다. p107 [나를 지켜낸다는 것]
내 집착은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내 집착은 무엇일까.
나는 한때 번역가가 되겠다고 호기롭게 공부와 육아, 일을 병행하며 살아왔다.
전부 ‘잘’하고 싶은 욕심에 모든 것을 내 손 안에서 통제하려고 애써왔다.
그런 모습이 과거에만 있었다고 하기엔 지금도 나는 모든 일을 통제하려 한다.
내 손 안에서 모든 걸 ‘잘’하고 싶은 욕심은 여전히 내 안에 자리하고 있다.
남들에게 잘한다고 인정받고 싶었고, 모든 일을 해냈을 때의 성취감이 좋아서 통제권을 놓을 수 없었다.
어쩌면 ‘해낸 나는 대단하다’는 자기만족에 취하고 싶었던 것일까.
많이 유연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통제하려는 내 모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이런 마음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한다면 아무리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매 순간의 현재를 더 의미 있게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은 바로 무수한 현재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p108-109 [나를 지켜낸다는 것]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 지루했다.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고 조급해졌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당연함에도 숙제처럼 해버리는 나 자신이 싫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차리고, 아이들을 깨우고, 어린이집에 보내던 그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러갔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고, 모성애가 부족한 것 같아 죄책감에 눌려 하루를 분노와 미안함으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이 사라진다면’, ‘10년 뒤에도 내가 지금과 같다면 ‘, ‘한 번뿐인 삶을 이렇게 허비하며 보낼 것인가 아니면 도전하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 순간 불안이 엄습했고, 생각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하루만 사는 것처럼 살자.
후회하지 않게 오늘만 열심히 살기로 했다.
게으르지 않게,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며 살기로 했다.
그랬더니 집안일도, 육아도, 나의 삶도 한결 가벼워졌다.
물론 사람인지라 게을러지고 싶고, ‘왜 나만?’이라는 생각에 빠지는 순간도 있었다.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최악의 순간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럴 때는 잠시 주저앉아 쉬어갔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일어나 하루를 이어갔다.
환경은 변하지 않아도 삶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은 실천 하나가 지금의 나를 만들고, 수많은 사소한 순간이 모여 성숙한 나를 만들어간다.
공부를 못하면 어떤가, 번역가가 아니면 어떤가.
엄마로서 아이를 돌보는 삶으로도 충분히 살 가치가 있다.
아이를 돌보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반드시 돌아온다.
나를 성찰하며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
<<대학>>에는 ‘멈춤을 안 이후에 정함이 있다 [知止以俊有定].’라는 명구가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현대인의 큰 문제 중 하나가 ‘멈춤을 알지 못하는 것[不知止]’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욕망에는 그침이 없고, 그런 이유로 마음이 항상 편안하지 못한 상태를 이르는 말입니다. p121 [나를 지켜낸다는 것]
한때 코인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전 세계가 코로나를 겪으며 주식과 코인으로 큰돈을 번 사람들이 많았다.
남편도 그 흐름에 올라타고 싶어 했고, 결국 함께 뛰어들었다.
남편의 목표는 단 하나, ‘한 방’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다.
우리는 한순간의 욕심으로 커다란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살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해맑고 순수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원망은 없었고, 오히려 나를 일으키는 힘이 있었다.
지금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길가에 주저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빚이 있다.
그런데도 살아가고 있다.
내 마음이 변하니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좌절과 실패 속에서 마음이 붕괴되고 혼돈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오늘을 성실히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