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켜낸다는 것] 책을 읽고 쓰는 이야기
전화기 너머로 긴장한 내 마음이 들릴까 노심초사했다.
한참 뜸을 들이며 다른 이야기를 하다, 결국 입을 열었다.
“엄마, 중국에서 내가 사춘기 때 한창 힘들어서 자주 전화했었잖아.
그때 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런 얘기를 안 해줬어?
인간관계나, 살아가면서 겪게 될 일들에 대해 조언이나 방향을 잡아주는 말을 했더라면
난 다른 선택을 하거나, 생각이라도 달라졌을 텐데.”
말은 아무렇지 않게 했지만, 이미 눈엔 눈물이 고였다.
엄마의 대답이 궁금했고, 사실은 듣고 싶은 대답이 있었다.
“엄마도 몰랐어. 몰라서 알려줄 수가 없었어.
그리고 직접 경험해야 진짜 네 것이 되니까, 직접 경험하게 한 거지.”
순간, ‘역시나’ 하는 생각이 스쳤고 서운함이 밀려왔다.
그래도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엄마가 먼저 살아봤으니 정답은 없어도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가볍게 말했지만 속은 답답했다.
그때 엄마가 세상은 이렇고, 인간관계는 이런 거라고 알려줬다면
정말로 다른 선택을 하며 살았을까?
최소한 상처는 덜 받고 살았을까?
엄마의 ‘몰랐다’는 말은 나에게 어떤 위로도 되지 않았다.
나는 정말로 ”엄마가 미안해. 옆에서 지켜주지 못해서. “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물었던 것일까.
좋고 싫음이 분명해진 건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였다.
어릴 때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조차 잘 몰랐다.
그저 남들이 하는 걸 따라 하며 방황했다.
임신과 출산을 거쳐 한 생명을 키우면서 깨달았다.
‘내가 여태 몰랐던 게 많았구나. 그걸 알려주는 어른이 없었구나.’
우리는 종종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른 채 살아간다.
나 역시 그랬다.
싫어도 좋다고 하고, 좋아도 싫은 척하며 남의 눈치를 봤다.
사춘기 시절, 나는 ‘다른 아이’가 너무 부러웠다.
내가 ‘다른 아이’였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인간관계의 기초는 두 시기에 형성된다고 한다.
첫째는 초등 시절 부모와의 관계, 둘째는 사춘기 때 친구와의 관계다.
특히 예민한 사춘기에 힘든 일을 겪을 때 부모가 지켜주고 방향을 잡아주면서 안정적인 관계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나는 그 두 시기를 모두 놓쳤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늘 바빴고, 나와 동생은 주로 할머니 손에 컸다.
사춘기 시절에는 중국에서 살았는데,
엄마는 한국에, 아빠는 일로 바빠서 우리를 신경 쓰지 못했다.
낯선 땅에서, 의지할 어른 없이 동생과 서로 기대며 버텼다.
관계 맺기에 서툰 나는, 은근한 따돌림을 당해도 몰랐다.
내 웃는 얼굴에 침을 뱉어도, “미안해, 잘못했어”라며 붙잡았다.
외로웠고, 힘들었고, 세상을 원망했다.
살고 싶지 않은 순간이 수도 없이 찾아왔다.
아직도 상처받은 채 그대로 멈춰 있는
‘어린 나’를 품은 채 살아왔다.
3개월 전, 나는 내 안에 있던 ‘어린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괜찮은 줄 알았던 내 아픔은 눈물로 다시금 회상되었고
어렵게 그 시절의 나를 마주하며 인정했다.
그때의 아픔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그때의 외로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단단해졌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 ‘그때의 어린 나’를 품은 채 살아간다.
그 존재를 외면하기보다, 인정하고 껴안는 순간
비로소 새로운 관계와 나를 향한 이해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