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기록되듯, 내 이야기도 나로부터 기록된다
올해 명절은 참 길었다. 긴 명절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 느낌이다.
명절 내내 하루하루를 정말 알차게 보냈다.
한창 코로나 시기였을 땐 명절에 게임만 했다.
아이들은 방치해 두고, 게임을 하면서도 아이들 생각에 죄책감이 밀려왔다.
오랜만에 오롯이 게임에 몰두했던 시간이었다. 그땐 그게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시간이 도무지 가지 않았다.
너무 더뎌서 빨리 크기만을 바랐다.
두 아이는 두 살 터울이지만, 개월 수로는 17개월 차이.
연년생 육아처럼 치열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아이들은 벌써 내 품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어느새 나만큼 자라 있었다.
안 갈 것 같던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버렸다.
귀엽고 통통하던 젖살이 빠지고,
키도 발 사이즈도 나만큼이나 커졌다.
막연히 영원할 것 같던 시절이 지나갔음을 요즘에서야 느낀다.
밤마다 후회하고 눈물을 흘리지만,
다음 날이 되면 또 같은 하루를 반복한다.
그런 내 모습이 지겹고, 한심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나를 용서하고, 여전히 사랑해 준다.
이렇게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를 내가 망쳐버리는 건 아닐까.
그 생각에 마음이 날마다 아프고 속상하다.
그래서 오늘도 다짐한다.
“하루만 사는 것처럼, 하루를 소중히 사랑하며 살자.”
‘아편 전쟁’ 역사를 싫어해도 누구나 들어봤을 이야기.
지금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처럼 느껴진다.
이 역시 청나라 때의 이야기다.
청나라는 오래된 역사 같지만,
연도를 보면 그리 먼 이야기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중국인들은 청나라 역사를 더 잘 알고,
드라마의 배경도 청나라 시대가 많다.
책을 읽다 보면, 중국은 늘 ‘몰락했다가 다시 태평성대를 이루고 또 몰락하는’
그 반복의 역사 속에 있었다.
책으로 읽으니 모든 사건들이 빠르게 흘러가지만,
그 시대를 살던 백성들에게는 그 시간이 결코 빠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살아오며 여러 대통령을 겪었듯,
그들 또한 한 황제와 함께 세기를 살아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긴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청나라가 ‘마지막 황제’가 있던 시대였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처음 알게 된 것은 늘 새롭고, 그래서 늘 놀랍다.
매카트니는 18세기말, 영국 국왕 조지 3세의 특사로
건륭제에게 파견되어 통상관계를 맺으려 했지만
‘삼궤구고두례(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법)’를 거부했다.
결국 그의 사절단은 실패했으나,
그는 훗날 중국이 서구 열강에게 침탈당할 것을 예견했다.
건륭제가 그때 매카트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지금의 역사는 달라졌을까?
아직도 청나라가 건전하게 이어졌을까,
아니면 매카트니의 예견처럼 지금의 중국이 세워졌을까?
시대의 흐름을 너무 늦게 읽은 왕족들,
그리고 자기 잇속만 챙긴 서태후.
그들이 없었다면 중국은 지금보다 더 강대국이 되었을까?
시간 여행을 하듯 읽어 내려간 중국 역사 속 인물들 가운데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미래를 준비한 사람’은 없었다.
혹 있었더라도, 권력이 없어 머물러야 했던 이들이었겠지.
결국 반복되는 건
‘땅을 빼앗고, 되찾고, 반란을 일으키는’ 이야기뿐이었다.
모든 역사는 결국 한 사람의 선택으로 시작되고,
그 선택이 다수를 움직여 세상을 만든다.
돌아보면,
내가 지금까지 한 선택 중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결혼’이다.
나는 결혼을 정말 잘했다.
주변을 보면 시부모님이나 남편 이야기를 하며 불평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나는 감사하다.
물론 결혼은 쉽지 않기에 조심스럽게 추천한다.
사랑이 전부가 아니니까.
나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산다.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었지만, 결과는 암담했다.
한때 사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동업을 한 적이 있었다.
모두가 “동업은 절대 하지 마라”라고 말했지만,
나는 믿었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도 잘했다.
하지만 나는 정신적으로 너무 취약했다.
모든 짐과 큰일은 내가 맡았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벅찼다.
내 힘듦을 알아주길 바랐지만,
상대방은 전혀 몰라줬다.
결국 내가 포기를 말하자, 상대방은 불같이 화를 냈다.
그 일이 내가 살면서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아니, 어쩌면 포기하지 않은 게 더 현명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걸 짊어졌던 나는 결국 뒤통수를 맞았다.
일이 끝나고, 사람들과 멀어졌을 때 마음은 피폐해졌다.
‘그러게, 동업을 왜 했어…’
혀를 차며 위로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더 깊이 무너졌다.
그 시절 나는 정말로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었다.
그땐 그랬다.
지금은 되돌릴 수 없는 그 시간을
나는 “돈 주고 산 경험”이라 표현한다.
돈을 내지 않았다면 그런 경험조차 없었을 테니까.
삶은 수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잘못된 선택도 하고, 실수도 반복한다.
하지만 다시 바로잡으며 살아간다.
내 선택으로 내 이야기가 쓰인다.
역사가 한 사람의 선택으로 기록되듯,
나의 인생도 나의 선택으로 써 내려간다.
역사책을 읽으며,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음을 느낀다.
나 또한 지금 이 시대의 한 역사 속을 살아가는 조용한 인물이다.
오늘도 나는 선택하고, 내일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