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어려운 인간관계
지인이 던져준 질문 하나가 마음에 남았다.
내 글은 거울 같은 글인가, 유리창 같은 글인가.
오랫동안 나는 내 이야기를 쓰는 ‘거울 같은 글’을 써왔다. 하지만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조금씩 ‘유리창 같은 글’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내 글을 읽고 위로받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면서.
어릴 때 나는 사람이 너무 좋았다.
정서적 결핍 때문에,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미움받을 용기도 부족했고, 거절도 못 했다.
누군가 시키면 따라가고, 편하게 이야기하면 그대로 믿었다.
그런데 그 솔직함과 따뜻함이 돌고 돌아 결국 나를 공격했다.
함께 험담을 했는데 어느 순간 나만 나쁜 사람이 되어 있거나,
친하다고 생각해 속내를 털어놓았더니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며 내 욕을 하는 사람들,
내가 싫어서, 내가 못생겨서, 이유를 만들며 나를 배척했던 사람들,
내가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나를 늘 어린아이 취급했던 사람들.
지금 돌아보면, 나는 그들을 용서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잊고 살았던 것뿐이다.
그 당시 나는 왜 성숙하지 못한 지, 어떻게 어른스러워지는 건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게 두렵고, 상처받기 싫어 그들에게 맞춰주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가시가 되어 나를 찔렀다.
가면을 쓰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았지만, 나는 상처투성이였다.
인간관계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미숙함이 그대로 드러났던 시기였다.
심리학에서는 인간관계의 기초는 두 번 형성된다고 한다.
첫 번째는 초등학생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두 번째는 사춘기 시절,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울 때 부모에게 보호받고 가이드를 받으며 생기는 안정감이 평생 간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두 시기를 거의 혼자 통제하며 자라났다.
초등학생 시절, 부모와 깊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고
사춘기에는 부모와 떨어져 지내며 정서적 기반이 붕 떠 있었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상처만 잔뜩 안고 어른이 되었다.
나를 감싸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믿으며, 텅 빈 마음을 어떻게든 채우려 안간힘을 쓰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남편을 만났다.
그리고 처음으로 상처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했다.
불안정하던 나를 안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준 건 남편이었다.
지금의 나는 깊은 이야기를 남편 외에는 거의 하지 않는다.
내 삶을 글이 아닌 ‘대화’로 정리하며 살아가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 과정의 대부분을 남편과 함께한다.
남편 또한 그렇다.
그런 삶을 오랫동안 지속하다 보니, 우리 둘만 있어도 부족함이 없는 부부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친구들과의 왕래는 자연스럽게 줄었고,
남들이 친구들과 하는 가벼운 대화도 나는 남편이랑만 한다.
교회에서 사람들을 만나도 깊은 대화보다는 조용히 들어주는 편이다.
여전히 인간관계에서 상처받는 사람들도 있고, 서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오해가 아니라 설명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나이가 든다고 성숙해지는 것도 아니고,
경험이 많다고 지혜가 쌓이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일까.
여전히 여자들끼리의 싸움, 보이지 않는 기싸움,
말 한마디로 생기는 오해들… 그런 것들이 나는 힘들다.
가끔 주변에서 묻는다.
“어떻게 그 자리에서 묵묵히 버티며 성장하고 있냐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이 자리에서 조용히 사람을 품으며 살아왔다.
쉽게 변하지 않고, 맡은 바에 충실하게,
불평 없이 지금의 삶을 지켜왔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믿음과 남편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