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으로 전세? (1) 임차인께 쓴 편지
(1) 전세 만기 1개월 전, 세입자분께 편지를 쓰기로 했다.
작년 10월부터 7개월째 고민 중인 문제가 하나 있다. 올해 1월 만기인 전세였다. 처음 전세를 내놓을 때는 이렇게 오랫동안 속을 썩일 줄 몰랐다. 그 일은 작년 10월, 연장계약으로 4년째 살고 있던 세입자분께서 만기일인 1월 말에 나가겠다는 문자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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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에 바로 전세를 내놓았다. 10월 말에 부동산에서 가계약 동의를 묻는 연락을 받았다. 계약조건 확인 후 최대한 빨리 전화를 달라고 했다. 생각보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계약 상황에 당황해하며 살펴보니, 전세대출에 동의 및 협조해 준다는 문구가 있었다. 아마 잔금 일정은 지금 세입자분과 서로 이야기가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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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대출 동의 및 협조가 혹시 질권설정이나 채권양도를 의미하는지 물어보니 질권설정이 맞다고 했다. 문득 지금 세입자분과 계약할 때 전세 대출에 협조는 하되 질권설정이나 채권양도는 하지 않는다고 특약을 넣었던 기억이 나서 이전과 동일한 조건으로 계약하겠다고 말씀드리니 결국 계약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은행에 집을 맡기는 것 같고, 아무래도 신경 쓸게 많고 번거로워서 되도록 복잡한 방식은 피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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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2달 넘게 부동산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부동산에서 블랙리스트가 된 것이 아닐까 걱정되어 세입자분께 연락드려서 집을 보러 오는 분들이 있는지 상황을 여쭤보았다. 10월 이후 거의 집 보러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대출에 어떠한 조건도 달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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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초, 전세를 내놓은 모든 부동산에 연락하여 전세대출에 동의하고 질권설정도 관계없이 거래를 적극 진행해 달라고 요청드렸다.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전세가 종료되는 1월 말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출근길에 대책을 고민하느라 마음이 바빴다. 세입자는 여전히 구해지지 않고 있었다. 와이프가 만기 이후로 시간을 조금 더 줄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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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일은 항상 어려운 일이다. 저번에 다른 건으로 세입자 분과 통화하다 잠시 목소리가 높아졌던 일이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아직까지 기분이 좋지 않을 텐데 부탁한다고 좋은 결과가 있을지 걱정이다. 올해 7월부터 한시적으로 허용되는 전세보증금 반환대출을 알아보았다. 벌써 자금이 소진된 것 같고 조건이 복잡해서 마음이 조급해진다. 바쁜 회사 상황으로 은행에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워서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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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세입자분과 상의할 일이 생기면, 먼저 문자로 혹시 잠시 시간이 되는지 물었다. 답장이 오면 바로 전화를 걸어 본론으로 들어가곤 했다. 하지만 돈이 걸려있는 대화는 결이 다르다. 전화로 불쑥 보증금 반환을 만기 이후로 조금 늦출 수 있는지, 계약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지 묻는 것은 그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었다. 그가 대뜸 내용을 듣자마자 기분이 상해서 바로 거절할까 봐 걱정부터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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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뭇거리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문자로 장문의 편지를 썼다. 전세 계약으로 서로 인연을 맺은 지난 4년간, 불편을 참아준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과 고마움을 담았다. 중간중간 오해가 되었을 말과 행동이 어떤 상황에서 나왔었는지 자세한 설명과 함께 이해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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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조금이라도 연장이 가능한지 묻고, 내가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드렸다. 다만 평소 그와 나의 관계로 볼 때 큰 기대는 하지 않고 그저 진심을 다해 부탁하는 말을 적었다. 바로 이사를 가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불편하지 않도록 바로 대출받아서 보증금을 돌려드리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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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서 용량이 초과되어 문자메시지를 세 개로 나누어 보냈다. 30분쯤 지났을 때, 문자 수신을 알리는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지금 계신 세입자 분의 답장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잠시 눈을 감았다가 용기 내어 수신 문자를 확인했다. 사실 자기도 다음 세입자가 빨리 구해지지 않을 것 같아서, 미리 전세대출 연장이 가능한지 알아보았다고 했다. 다행히 월 단위로 연장 가능하니 언제까지 연장하면 좋을지 묻는 답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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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긴장하고 있다가 그분이 전한 따스한 마음이 전해져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잠시 후 감정을 추스른 뒤, 최대한 기한을 연장한다면 언제까지 가능한지 물어보니 그가 5월 말까지 딱 4개월간 연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 4개월이면 충분하겠지. 그때까지는 무조건 세입자가 구해지겠지. 다시 한숨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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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2개월이 지났다. 하도 연락이 없어서 부동산에 전화해 보니 주방 구조가 특이해서 마음에 안 든다는 사람도 있었고 다용도실 쪽 페인트 벗겨진 것을 문제 삼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세입자 분께 연락하니 사실 바로 며칠 전 계약하겠다는 사람이 있었지만 2주 안에 입주하기를 원해서 거절했다고 했다. 본인들이 갈 집을 구하는데 시간이 필요해서 그렇게 빨리 이사 가는 것은 어려워서였다. 몇 달 만에 겨우 바로 입주하겠다는 분이 나타났는데도 계약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까웠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