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기안을 올리고 퇴근한 늦은 금요일밤. 수면 부족으로 잠이 쏟아진다. 출간 원고도 비상이다. 주말까지 수정 원고를 출판사에 드리기로 했다. 일에 치여 원고를 고치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진다.
나를 책 쓰기로 이끄신 앨작가님께 추천사를 부탁드렸다. 10권이 넘는 책과 따뜻한 글로 세상을 밝히며, 수많은 강연과 일을 해내시는 분. 바쁘셔서 부탁드리기 죄송했지만, 내 첫 책을 여는 글은 선생님이어야 했다.
김애리 작가님. 책 쓰기 멘토이자 내게 새로운 문을 열어주신 분. 러닝 선생님이신 연진코치님만큼 내가 존경하는 분이다. 정신없이 일하던 어느 날, 선생님의 추천사를 받았다.
금세 글에 빠져들었다. 어쩌면 이런 편안한 단어들로 진심을 담을 수 있을까. 두 장의 글이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는 느낌에 가슴이 촉촉해졌다. 내 원고를 읽어주신 감사함과 더불어 지난 4년간 달리며쓰던 시간을 글로 안아주며 토닥이는 느낌이 들었다. 한 글자 한 글자에서 깊은 응원을 느꼈다.
연초부터 책을 쓴다고 머리를 싸매던 시간들. 무더운 여름에 스터디카페에서, 버스에서, 퇴근길 도서관에서 틈틈이 원고를 쓰고 퇴고하던 시간들. 눈이 따갑고 아파서 텍스트를 읽어주는 어플로 내 초고를 들으며 글을 다듬던 시간들. 더 이상 쳐다보기 싫을 정도로 애쓰고 애쓰던 나날들.
첫 책을 쓰며 배운다. 글은 손이 아닌가슴으로 써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뜨거운 애정을 담아 수없이 퇴고하는 시간. 끝없이 펼쳐진 '글의 계단'을 반복해서 오르는 시시포스의 '글 다듬기'.
내가 전업 작가도 아닌데... 하다가도, 그래도 첫 책인데 제대로 써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를 살린 달리기에 대한 헌사이고 존경이니, 힘을 내어 다시 펜을 들었다.
토요일에 '몸의 계단'을 올랐다. 모처럼 계단을 뛰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땐 술을 마시듯, 내겐 러닝클래스가 한 잔의 술이고 숨 쉴 틈이다. 밝은 아침에 더 밝은 러너들과 함께 계단을 오른다. 코치님도, 매니저님도, 사람들과 뛰는 게 정말 즐겁다.
행복하게 훈련을 마치고 집에서 노트북을 챙겨 나왔다. 스터디카페에서 8시간권을 끊었다. 눈이 따갑고 졸리다. 원고를 다시 보는 게 버겁다. 이제 그만하고 내려놓을까? 업무로 쌓인 피로도 풀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앨작가님의 추천사가 떠올랐다. 선물 같은 그 글을 다시 열었다. 한참 읽다가 글의 끝에 이르렀다.
"무엇보다도 달리기라는 행위가 가진 철학 같은 의미를 맛보게 된 것’. 모두 승우님의 글이 제 안과 밖에서 일으킨 놀라운 변화거든요. 그는 ‘살기 위해 달렸다’고 고백하지만 그의 솔직한 고백은 많은 이들을 진정으로 살릴 것 같습니다."
사실이었다. 이 책은 달리면서 나를 다시 살린 이야기였다. 달리기가 나를 살렸고, 이 책이 나와 같았던 이들을 진정으로 살리기를 바라며 써 내려갔다. 4년의 달리기를 통해 송두리째 바뀐 삶을 글에 담았다.
눈이 아프고 힘들어서, 이제 원고를 그만 고치려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나를 위해 멀리서 펜을 들어 진심으로 축복해 주신 선생님의 추천사가 지친 나에게 다시 일어나라고 손을 내미는 것 같았다.
그 손을 꼭 붙잡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노트북 원고를 다시 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퇴고시간, 책의 맨 앞에서 나를 반겨줄 앨작가님의 추천사에 부끄럽지 않도록 남은 힘을 다 쏟아내기로 했다.
감사하고 벅찼다. 이런 멋진 분들이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있다는 걸, 정말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셨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그들의 따뜻한 시선과 애정 어린 격려에 가슴이 뭉클했다. 코치님과 매니저님, 그리고 소중한 당신들.
누구나 자기만의 계단이 있다.
오늘도 일의 계단, 글의 계단, 몸의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을 당신에게, 이 책이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기를 간절히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