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분식집 1
"하아.. 하아.."
'얼마를 걸었을까?'
'시간은 몇 시지?'
이미 해가 뜨고도 시간이 꽤나 흐른 것 같은데, 환은 여전히 산길을 헤매고 있었다.
"아... 대체 내가 어디에 있는 거야? 한참을 온 것 같은데... 왜 아직도 산이야?"
"아니...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어?"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찾는 환.
하지만 핸드폰이 없다는 사실만 다시 확인할 뿐이었다.
"젠장... 핸드폰만 있었어도... 아 배고파... 목도 마르고..."
"저기요~~! 누구 없어요~~?"
- 없어요... 없어요... 없어요... -
환은 허공을 향해 크게 소리 질러 보았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들려왔다.
- 뾰로록~ 뾱뾱~ -
그나마 간간이 들려오는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적막을 깨고 환의 불안한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새소리라도 들려오니, 너무 조용하지 않아서 좋긴 하네..."
누가 듣지도 않는데 혼잣말을 하며 터벅터벅 산길을 걷고 있는 환.
새소리에 긴장이 조금 풀어져서일까...
불현듯 식당에서의 그 이상한 일이 떠올랐다.
'대체 그건 뭐였지? 분명 꿈은 아니었는데...'
'이것 봐! 내가 지금 산에 있는 것 자체가 그렇잖아?'
'혹시... 영화에서처럼 누가 가스 같은 걸 뿌려서 우릴 잠재우고, 장기나 뭐 그런 걸 빼내고 산속에 버린 건가?'
'그러기엔 내 몸도 너무 멀쩡하고 상처 하나 없잖아?'
'진짜 모를 일이네... 대체 누가 날 산에 데려다 놓은 거지?'
'다들 무사하긴 한 걸까?'
풀리지 않는 의문, 걱정 등이 복잡하게 엉켜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듯했다.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
- 팍팍... 팍팍... 팍팍... -
'무슨 소리지?'
환은 발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 팍팍 팍팍 -
'이건... 누군가 있다!'
소리의 정체가 사람의 기척임을 확신한 환은 반가움 반, 두려움 반의 심정으로 조심스레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이동했다.
점점 더 선명해지는 소리.
- 팍팍 팍팍 -
"아..."
마침내 환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호미질을 하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이었다.
환은 자기도 모르게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마침내 사람을 만나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아이고!"
환의 소리에 놀란 여인이 몸을 돌리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이 깜짝이야!"
"아... 놀라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사람을 보니 너무 반가워서..."
땅에 주저앉은 채 환을 돌아보는 여인.
그녀는 하얀 저고리에 하늘색 치마를 입고 댕기머리를 하고 있었다.
'뭐야...? 이 산속에서 왜 한복을 입고 있지?'
등산복도 아니고... 산에서 한복을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조금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환이었다.
"무... 무슨 일이오?"
여인은 몸을 일으켜 옷에 묻은 흙을 탁탁 털어내며 환에게 물었다.
한눈에도 긴장이 역력한 모습.
이를 알아챈 환은 최대한 부드러운 뉘앙스로 말을 꺼냈다.
"제가 지금 핸드폰도 없고... 수중에 가진 돈도 없고... 여기가 어디인지도 전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죄송하지만 핸드폰 좀 잠시 빌려 쓸 수 있을까요?"
"해... 뭐요? 핸드...?"
"네! 핸드폰이요!"
그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눈에도 환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 더 깊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난 도령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소."
'응? 도령?'
환은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여인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놀라서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다시 한번 천천히 설명을 했다.
"그러니까... 핸. 드. 폰! 핸드폰 있으면 좀 빌려 쓰고 싶다고요.."
"핸드... 퐁...? 아이! 미안하지만, 정말로 도령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소!"
'또 도령이라고...'
"아... 답답해... 그럼 혹시... 이 근처에 편의점이나... 그래! 경찰서! 경찰서나..."
답답한 상황에 짜증이 치밀어 오른 환이 자기도 모르게 언성을 높여 여인을 다그쳤다.
그러자, 여인도 화가 난 듯 환에게 신경질적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보시오! 해괴한 복장으로 갑자기 나타나서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니... 대체 목적이 무엇이오?"
"행여 날 희롱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우리 아버지가 한양에서 소문난 포수라... 내게 이상한 짓을 했다간 땅 끝까지라도 쫓아가 보복할 테니까!"
바구니에 있던 호미를 꺼내 두 손으로 꽉 움켜쥐는 그녀. 호미의 날 끝은 당연히 환을 향하고 있었다.
'한... 양...?'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런 소리를 하세요? 난 그저 핸드폰 좀 빌려달라고 했을 뿐인데..."
"그쪽이야 말로, 이런 산속에서 한복을 입고 앉아 있으니... 오히려 나보다 더 수상한 것 아닌가요?"
환은 말을 더 이어나가려고 했지만, 더 이상 그녀를 자극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냉정을 되찾았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차분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을 건네본다.
"놀라게 한 점은 다시 한번 미안해요. 제가 사과드릴게요..."
"대신 마지막으로, 진짜 하나만 알려줘요! 그럼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 그러시오..."
"여기가 대체 어디쯤이죠? 충청도? 강원도?"
"무슨 소리요! 한양 아니오 한양!"
'응? 또 한양?'
환은 진지한 표정으로 장난 같은 말을 하는 여인이 무척 의아했지만, 그에게 최근 일어난 온갖 이상한 일들을 생각하니 이 정도 상황은 왠지 수긍이 갔다.
게다가 요즘 이상한 사람이 좀 많아야지?
"알겠어요... 그럼, 혹시 언제 산을 내려갈 생각이에요? 그때 나도 같이 가도 되나요?"
"내가 평소에 등산도 잘 안 하는 데다가... 워낙에 방향치라서..."
환의 부탁에 잠시 고민하던 여인은 이내 결심한 듯 환에게 말을 건넸다.
"마침, 나물도 다 캐서 내려가려고 했던 참인데... 뭐... 그 정도는 해주겠소!"
"대신... 내 앞으로 가시오! 뒤에 있으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니까... 내가 뒤따라 가면서 길을 알려줄 테니..."
'아... 정말... 사람을 뭘로 보고...'
"알겠어요! 알았으니까..."
"그럼... 내가 먼저 갈게요!"
그렇게 환이 먼저 출발하고 여인이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환의 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걷는 여인. 손에는 여전히 호미가 들려 있었다.
"그나저나, 왜 산에서 그런 옷을 입고 있나요?"
"아니... 내가 내 옷 입고 있는 게 뭐가 그리 궁금하시오? 그리고 내 보기엔 오히려 도령의 옷이 더 이상하오만!"
그녀의 말에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을 쳐다본 환.
'하긴... 산에서 조리복을 입고 있는 나도 이상하게 보이긴 하겠군?'
"그런데... 왜 자꾸 날 도령이라 부르는 건가요?"
"그... 그야... 상투를 틀지 않았고.. 수염도 없고... 피부도 곱고... 뭔가 나이도 어려 보이는 것이... 그냥 딱 봐도 도령 같았소! 아니오?"
"아... 그렇군요... 네... 뭐... 원하는 대로 편하게 부르세요..."
환은 생각했다.
'말투도 그렇고, 쓰는 단어도 그렇고... 진심으로 이상한 여자다... 무슨 청학동 출신이야?'
**********
그렇게 둘이서 얼마를 걸었을까? 갑자기 여인이 환에게 소리쳤다.
"여보시오! 이제 다 왔소! 저 앞 언덕만 넘으면 마을이 보일 거요!"
그녀의 말에 멈춰 선 환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다시 그녀에게 되묻는다.
"정말인가요?"
"정말이오!"
그녀의 확신에 찬 한마디에 환은 전율을 느꼈다.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다!'
여인의 말에 다시 걷기 시작한 환.
그런 그의 걸음은 조금씩 빨라지더니 어느새 언덕을 향해 뛰고 있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무엇보다 동생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무사한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 헉헉헉 -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집에 가자!'
그러나, 언덕 위에 도착한 환은 갑자기 달리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한참을 넋이 빠진 듯 앞을 응시하더니... 이내 그를 따라잡은 여인에게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요... 아까 여기가 어디라고 했었죠?"
"몇 번을 물어보시오? 여기는 한양이요 한양! 한! 양!"
"한... 양...?"
'민속촌이 아니고?'
"정말 미안한데..."
"아이 참... 나 빨리 가서 저녁 상 차려야 한단 말이오! 어서 말하시오!"
"한양...이라고 하면?"
"한양 말이오 한양! 이 나라는 조선! 조선의 도읍은 한양! 한양은 임금님이 계시는 곳!"
"어린아이도 다 아는 것을 왜 자꾸 물어보는 거야...?"
- 털썩 -
그녀의 말을 듣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린 환...
'내가 지금 조선에 있다고?'
그의 눈 앞으로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조선'의 모습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