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칭푸르 Mar 24. 2020

중화반점

중국집 속의 호텔

북경반점... 

무려 '중국의 수도 이름'이 떡 하고 박혀 있음에도 우리에겐 너무나도 친숙한 이름..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 유년기와 소년기를 거쳐 청년기와 장년, 중년, 심지어 노년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이름에 가슴이 뛰었을까?

초등학교에서 반장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 졸업식, 회사 회식, 이사를 마친 후... 

우리는 아마 평생 한번쯤은 이 '북경반점'이란 이름을 찾아 우리의 소울푸드 중 하나인 짜장미엔(炸酱面 : 짜장면)을 시켜 먹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북경반점이란 이름을 듣고 단번에 떠올릴 것은 다름아닌 중국집!

실제로 초록창에서 북경반점을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에 얼마나 많은 '북경반점'이란 이름의 중식당이 있는지.. 

어느새 한국에서 중국집의 대명사로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버린 북경반점!

그렇다면, 대체 북경반점이란 원래 뭐하는 곳이길래 먼 한국까지 넘어와 중국집을 대표하게 되어버린 것일까?


북경반점! 

한국식 한자로 ‘北京飯店’이며, 중국어로는 ‘北京饭店’이라 쓰고 ‘뻬이징 판디엔’이라 읽는다. 

여기서 북경(北京)은 당연히 중국의 수도(베이징)을 의미하며, 반점(飯店)은 ‘밥’, ‘식사’를 의미하는 반(飯)이란 한자를 통해 식당일 것 같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자에 나온 의미 그대로 북경에 있는 식당을 의미하는 걸까? 

(* 참고로 ‘반점’은 이미 ‘중국 음식을 파는 대중 식당’이란 의미로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사실 반점, 즉 ‘판디엔(饭店)’이란 중국어로 ‘호텔’을 의미한다. 비록 ‘식당’이라는 제 2의 의미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중국에서 판디엔이라고 하면 보통 호텔이란 의미로 쓰인다. 

그러니까 이 '북경반점'이라고 하는 대표 중국집 브랜드(?)의 중국 본점(?)은, 당황스럽게도 맛있는 짜장면을 파는 중국집이 아닌 1900년에 오픈한 오랜 역사의 고급호텔인 것이다. 

묘한 배신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러니까.. 북경반점이든 남경반점이든 상해반점이든, 중국에서 '반점'이란 이름이 붙은 곳은 일반적으로 '짜장면을 파는 한국식 중국집'이 아닌 '호텔'이라는 이야기!

우리가 중국에서 잘 곳을 찾을 때 눈 여겨 봐야 하는 이름은 대략 다음의 것들이다. 

위에서 언급한 판디엔(饭店)을 비롯해, 지우디엔(酒店), 삔꽌(宾馆), 뤼꽌(旅馆), 짜오따이쑤워(招待所) 등이 그것! 

우선 판디엔(饭店)지우디엔(酒店)은 보통 좋은 호텔을 의미한다. 이 두 명칭은 중국에서 그리 구분을 두고 쓰지는 않지만, 굳이 차이를 말하자면 지우디엔(酒店)이 판디엔(饭店) 보다 조금 더 최근에 생긴 이름이랄까... 즉, 역사가 깊은 호텔의 경우 주로 판디엔(饭店)이란 이름이 붙어 있고, 현대식 시설을 갖춘 최근의 호텔은 지우디엔(酒店)이 많다고!


혹자는 판디엔(饭店)지우디엔(酒店)의 이름 안에 들어 있는 밥()과 술()로 구분하기도 한다.

과거 중국이 어려웠던 시절, 호텔을 찾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잠 이외에 따뜻한 '밥' 한끼.. 하지만 개혁 개방 이후 잘 살게 되면서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 속 사람들은 밥 보다는 즐길 수 있는 '술'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호텔은 밥과 함께 해(기본에 충실) 판디엔(饭店), 현재의 호텔은 술과 함께 해(편의 시설이 좋아진) 지우디엔(酒店)!

어쨌거나, 현관에 도착하는 순간 벨보이가 짐을 받아서 옮겨 주며, 클래식이 울려 퍼지는 홀에서는 잘 차려 입은 깔끔한 직원들이 미소로 응대해주는 그런 숙소가 바로 판디엔(饭店)지우디엔(酒店)이란 점을 기억하자.


호텔 다음 등급으로 시설이 괜찮은 모텔을 가리키는 말은 삔꽌(宾馆)이다. 한국식 한자로는 ‘빈관(賓館)’이며, 판디엔(饭店), 지우디엔(酒店)과 같은 화려함은 없어도 무척 깨끗하면서도 합리적 요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숙소를 가리킨다. 요금은 호텔보다 많이 저렴하지만, 위치도 좋고, 서비스도 꽤 괜찮은 편이어서 중국을 찾는 많은 외국인들이 이를 이용한다. (* 또한 옛날 사람들이 '호텔'을 말할 때 쓰던 이름이라, 비교적 낡은 시설을 갖춘 곳이 많다고 한다.)


나머지 뤼꽌(旅馆)짜오따이쑤워(招待所)는 서로 비슷한 개념으로 ‘여관급 숙소’를 가리킨다. 실제로 뤼꽌과 짜오따이쑤워를 한국식 한자로 옮기면 여관(旅館)과 초대소(招待所)가 되는데, 모텔보다 열악한 환경으로 그저 ‘잠만 잘 수 있는 곳’이란 개념이 강한 곳이다. 사실 이런 숙소는 주로 중국사람들 중에서도 빈곤층이 이용하는 곳으로 요금은 어마어마하게 저렴하지만, 치안도 좋지 않고, 도난의 우려도 있어 한국 사람이 이용할 일은 거의 없다.(아니... 이용해서는 안된다! 다만, 학교에서 운영하는 짜오따이쑤워(招待所)는 믿고 이용할만 하니 참고하자!)


재미있는 점은, 고급 호텔인 판디엔(饭店)과 지우디엔(酒店)을 제외한다면 모든 숙소가 다 한자만 읽을 수 있어도 ‘잠을 잘 수 있는 장소’란 것을 유추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한국인이라면). 생소한 언어라고 무턱대고 두려워하지 말고,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다면 의외로 쉽게 답을 찾아낼 수도 있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중국이란 나라와 중국어라는 언어를 알아가는 데 있어 가장 큰 실마리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중화반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