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분식집4
"아니... 이 보시오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장사를 하고 있는데... 거 너무하시는 것 아니오?"
한참 동안 부둥켜안고 울던 두 사람을 못마땅한 듯 지켜보던 연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니여~ 우린 괜찮으니까 계속들 하셔!"
"그러게! 오래간만에 좋은 구경 하는구먼. 밥맛도 더 좋아지는 듯하고 껄껄."
하지만 분식집 손님들의 반응은 오히려 대환영!
하긴, 조선에서 대낮에 남녀가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아이참! 그런 말들 마시오!"
사람들의 말에 그제야 떨어져 눈물을 닦는 두 사람.
이때를 놓칠세라 연아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아니... 아씨는 대체 누구시길래 갑자기 찾아와 남의 장사를 방해하는 거요?"
"환도령도 환도령이오! 객들이 기다리는데 음식은 안 만들고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오?"
그러자, 부엌에서 이를 지켜보던 정훈이 눈치 빠르게 환을 거들고 나선다.
"걱정하지 마 누님! 내가 만들고 있으니까..."
하지만 정훈의 말에도 왠지 분이 풀리지 않는 연아였다.
"아... 박주모... 그게 실은..."
환은 눈물을 닦으며, 연아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왜, 내가 예전에 이야기했었지요? 집 나간 누이를 찾아서 한양에 왔다고..."
"그... 랬지요?"
"이 아이가 바로 제 누이입니다."
"아..."
"그...래요? 누이... 였구나..."
환의 해명에 연아는 잠시 놀라 주춤하더니, 이내 선주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그래요. 누이! 닮지 않았나요? 하하"
긴장이 풀린 듯 마침내 웃음을 보이는 환.
"무슨 말이오? 전~~ 혀 닮지 않았소! 아니... 아씨가 이리 곱게 생기셨는데... 누가 환도령의 누이라고 생각이나 하겠소?"
말은 여전히 툭툭 쏘았지만, 누이라는 환의 말에 이상하게 화가 누그러든 연아였다.
"안녕하세요. 여기 있는 김환의 누이 김선... 주라고 합니다."
어느덧 울음을 멈춘 선주도 눈물을 훔치며 연아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안녕하시오! 난 이 분식집의 주모인 박연아라고 하오!"
"이름이 박... 연아 시군요? 제 오빠... 아니, 오라비가 신세를 지고 있는 듯하네요. 고맙습니다."
"신세는 무슨... 거, 장사에 도움이 되니 서로 신세를 주고받고 하는 사이요.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오."
여전히 퉁명스러운 말투로 일관하는 연아.
'기가 센 사람인가? 생긴 건 전혀 안 그럴 것 같은데...'
이상하게 환에게 날을 세우는 연아를 보며 선주는 생각했다.
"그나저나... 무슨 사연인지는 내 잘 모르겠소만... 두 사람이 힘들게 만난 듯 하니 오늘은 회포나 푸시오!"
"알겠어요... 우선, 오늘 장사만 먼저 끝내고..."
"장사는 무슨! 환도령이랑 누이가 한바탕 소란을 일으킨 탓에 오늘 장사는 김샜소! 빨리 문 닫고 나도 좀 쉬어야겠소!"
장사를 계속하겠다는 환의 말에 연아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얘 진아야! 오늘 장사는 여기까지만 할 거니까, 지금 있는 객들 나가면 더 받지 말고 문 닫아라!"
"예, 그럴게요."
'아니, 이 여자가 웬일이지?'
연아의 태도가 의아한 환.
"안 그래도 되는데..."
"시끄럽소! 나도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더 못할 것 같으니, 그리 알아요!"
"그리고... 거... 선... 주아씨?"
"난 그냥 이름 말고 박주모라고 부르면 되니까, 그리 하시오!"
"네... 그럴게요 박주모님... 우리 때문에 배려해 줘서 고마워요..."
"배려는 무슨... 그런 거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오!"
연아는 고맙다는 선주의 인사가 부끄러웠는지 두 사람을 뒤로하고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니 누님? 여기는 왜?"
"시끄럽다 이놈아! 지금 있는 객들의 음식은 만들어야 할 것 아니냐?"
"혼자서 하면 된다니까..."
"시끄러워! 그리고... 뭔 그릇을 이렇게 많이 꺼내놓고 쓴 거야?"
환은 자신과 선주를 배려해 준 연아의 마음을 이해하고, 수줍어하는 그녀의 태도에 웃음을 보였다.
"그럼 부탁한다, 정훈아!"
"예! 사부,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연아는 자신에게 인사를 하고 사라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미쳤지 미쳤어... 박연아... 라니? 내가 왜 이름을 이야기했대? 그냥 박주모라고 하면 될 것을...'
정훈이 그런 연아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았다.
"누님이 오늘은 사부를 위해 마음 크게 쓰셨네요?"
"뭐... 뭐래니? 시끄럽고, 거 빨리빨리 움직이지 못해?"
"예~예~"
자신의 뻘쭘함을 죄 없는 정훈에게 푸는 연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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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은 선주를 데리고 분식집 근처의 정자로 향했다.
"선주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곳엔 언제 왔고... 어떻게 지냈어?"
"오빠..."
단 둘이 되자 선주는 지난 시간의 마음고생이 생각나는 듯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잘 못 먹고 지내는 거야?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오빠... 나 예전보다 더 찐 건데... 지금 놀리는 거야?"
"아니 이게 찐 거라고? 그럴 리가?"
"나, 연습생 하면서 다이어트 엄청했었잖아! 그때에 비하면 지금 엄청 찐 건데..."
"그랬나? 내가 매일같이 튼튼한 박주모만 보다 보니 착각을 했나 보다..."
"무슨 소리야! 썰렁해~ 아하하하~"
그제야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선주는 밝은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이제야 내 동생 선주 같네!"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지만... 네가 박주모한테 하는 말투도 그렇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네 걸음걸이나 몸가짐도 그렇고... 내 동생 맞나 싶을 정도로 생소한 모습들이어서... 대체 그간 어떻게 지낸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오빠야 말로 웬 분식집? 나, 처음에 이름 듣고 깜짝 놀랐잖아?"
"그게 말이야... 사연이 긴데... 내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은 네 이야기 좀 들려줘."
"알았어 그럼..."
환의 말에 선주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날 분식집에서, 우리가 그 이상한 일에 휘말리고 난 후, 정신을 차려보니까 내가 웬 산속에 누워 있는 거야..."
"캄캄한 밤이었고, 갑자기 산속에서 눈을 뜨니까 너무 무서워서 멘붕이 왔었는데..."
"뭔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정신 차리고 우선 핸드폰 플래시를 켰지!"
"잠깐, 너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어?"
"응! 당연하지! 늘 몸에 지니고 있으니까... 오빠도 잘 알잖아? 나 핸드폰 없으면 하루도 못 사는 것..."
"그래서? 지금도 가지고 있어?"
"응. 지금은 배터리가 없어서 무용지물이지만..."
"그랬구나... 아무튼 그래서?"
"그렇게 산길을 헤매다가 발을 헛디뎌서 어딘가로 굴러 떨어졌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어떤 허름한 초가집에 누워있더라고..."
"초가집에?"
"응."
"그게 알고 보니까, 지나가던 사당패 사람들이 날 발견하고 구해줬더라고..."
"아..."
"그게 언제야?"
"벌써 1년 전 일이야..."
"아니... 난 여기 온 지 이제 두 달 정도 되었는데.. 어째서 넌 1년 전인거지?"
"그래? 난 오빠도 당연히 나랑 똑같이 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흠.. 분명 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가 있나 보다..."
"맞다! 그러고 보니 꽃집아저씨는 40년 전에 왔다고 했어!"
"뭐? 꽃집아저씨도 온 거야?"
"응..."
"이상하네...? 꽃집아저씨는 그 자리에 없었잖아?"
"그게... 들어오시다가 문 앞에서 말려드신 것 같아."
"그랬구나...? 그럼 오빠는 꽃집아저씨를 만난 거야?"
"그게..."
"꽃집아저씨는 이미 돌아가시고.. 그 아드님을 만났어. 이승환형님이라고..."
"아... 꽃집아저씨가 돌아가셨구나... 좋은 분이셨는데..."
선주는 꽃집아저씨의 소식을 듣고 가슴이 먹먹해져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 와서 크게 성공하신 것 같더라고. 조선의 농업발전에 크게 기여하시고... 덕분에 사람들의 삶을 크게 개선하셨어."
"잘 지내다가 가셨다고 하니..."
"그래도..."
환은 우울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화제를 바꿨다.
"그래서 넌 계속 사당패랑 지내고 있는 거야?"
"아니..."
"한동안 사당패를 따라다니긴 했어. 다들 좋은 분들이라서..."
"함께 전국을 누비면서 이곳의 생활이나 필요한 것들에 대해 많이 배웠지."
"고마운 분들이네..."
"그럼 지금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기방에 있어. 연화각이라고..."
선주의 입에서 나온 기방이라는 말에 깜짝 놀란 환!
"뭐? 기방? 내가 아는 그 기방? 너 그럼..."
"걱정 마! 오빠! 내 머리만 봐도 알 수 있잖아."
"그러고 보니, 너 댕기머리를 하고 있구나?"
"응!"
"난 기방에서 춤만 춰! 그게 기방에 들어가는 조건이었고."
"휴... 난 또..."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난 장차 아이돌이 될 사람이잖아! 요즘 아이돌 과거가 얼마나 중요한데..."
"너..."
"오빠! 난 꼭 돌아갈 거야! 돌아가서 엄마한테도 효도하고, 아이돌도 될 거야."
"그래... 우리 꼭 돌아가자 선주야!"
환은 선주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엄마가 우리를 얼마나 기다리겠어? 엄마 생각만 하면..."
"아니... 그건 어떨지 몰라..."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지금 과거로 온 거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가 사라지던 바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엄마는 우리가 이런 일을 겪은 사실을 전혀 모르실 거야."
"엄마가 분식집으로 돌아오면 그 시간에 우리가 분식집에 있을 거니까..."
"에휴... 정말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좋겠다."
환의 말에 선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뭐가?"
"내가 널 모르고 길에서 마주치면 그냥 완전히 조선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말투도 행동도..."
그러자 크게 웃는 선주!
"아하하하하~ 오빠! 내가 누구야? 나 아이돌 연습생이야!"
"다행히도 내가 연기학원 다니면서 사극 대본을 많이 연습했었잖아~ 사극이 하고 싶어서..."
"맞아! 기억난다. 집에 와서도 대본 외운다고 난리를 피웠었지? 그때는 연기가 영 엉망이었는데..."
"그랬나? 난 꽤 잘했었던 것 같은데... 역시 실습이 중요한 건가? 으흠..."
"하긴... 이미 1년이나 여기서 살았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그러게... 사극이 그렇게 하고 싶더라니, 결국 진짜 조선으로 와 버렸네?"
"아무리 그래도 진짜 조선은 너무 오버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