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학기의 어학연수를 마친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 1, 2년만 더 있으면 중국어를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모아놓은 돈으로는 그 이상 더 공부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더구나 나이도 스물아홉 살이나 되었기 때문에 취직이라도 하려면 하루라도 더
빨리 돌아가는 것이 옳았다.
2003년 8월에 중국으로 떠났던 나는 그렇게 2004년 6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 달쯤 뒤 나는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영화사 스크립터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게 됐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는 큰 영화사였는데 중국 로케 영화를 찍을 예정이라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스크립터를 뽑는다고 했다. 원래 꿈이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 작가였던
나는 현장을 체험해볼 좋은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공들여 쓴 이력서를 메일로 보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메일이 계속 튕겨 나왔다. 알고 보니 메일을 보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상대방 메일 용량이 꽉 차서 내 메일이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5, 6번을 보내고 또 보내던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내보자 생각하며 메일 발송 버튼을 눌렀다.
운좋게도 메일이 영화사 조감독님께 전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뒤 영화사에 한 달 정도 근무한 적은 있지만 영화가 금세 제작이 무산되어
제대로 된 현장은 경험하지 못했었다. 따라서 영화사에서 하는 업무, 특히 스크립터가 해야 하는 업무를
거의 알지 못했다. 또한 영화에 필요한 문서를 작성, 정리하고 감독님을 보조하는 스크립터는 보통
20대 초중반의 친구들이 많이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면접을 보러 가 조감독님을 만난 자리에서
내가 열심히 잘 할 수 있으니 더 이상 면접을 보지 않으셔도 된다고 큰소리를 쳤고
말도 안 되는 허세(?)가 먹혔는지 다음날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배고픈 영화쟁이의 라이프가 시작됐다.
햇수로 3, 4년 정도 영화사에서 일했는데 그 사이 4편의 영화를 준비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내가 준비하는 영화는 한 편도 촬영에 들어가지 못했다.
속되게 말해 죄다 엎어졌다. 편당 평균 8개월의 프리 프러덕션(사전 준비 작업)을 진행했지만
때로는 주연 캐스팅이 안 되어서, 때로는 투자가 안 되어서 영화들이 엎어졌다.
지금이야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영화하는 연출부들도 월급을 받고 일하지만 그때만 해도
영화는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기에 열정페이가 강요되던 시절이었다. 그 때문에 7, 8개월
열심히 일해도 수중에 제대로 된 돈 한 푼 만져보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다만 영화사에서
점심, 저녁을 주고, 교통카드에 돈을 충전하고 영수증 가져 오면 교통비를 보조해줬기에
굶어죽지 않는 정도로 살 수 있었다. 아무튼 나는 내가 들어가는 영화마다 엎어진다는
기분 좋지 않은 속설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영화가 연속으로 두 편 엎어졌을 때 회사에 취직을 했었다.
이 년 가까이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한 터라 어떻게 배워온 중국어인데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때 우연히 번역 에이전시에서 PM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됐다. 번역 에이전시는 출판 저작권을 중개하고, 번역사와 출판사를
연결해주는 일을 하는 회사를 말한다. 회사마다 저작권 중개만 하는 곳도 있고,
번역 일감을 번역사에게 소개하고 수수료를 떼어가는 곳도 있는데 내가 일한 곳은 후자였다.
당시 내가 맡은 업무는 흔히 PM이라 부르는 프로젝트 매니저로 번역할 책들을 검토하고
번역사와 출판사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애시당초 답답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것을
싫어했던 내게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전화통을 붙잡고 있거나 산더미 같은 책들을
검토하고 프린트해야 하는 PM 업무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회사에서 일한 지 한 달쯤 됐을 때
나는 그만둘 일이라면 빨리 그만 둬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소심한 내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팀장님께 그만 두겠다고 과감하게 말씀드렸다. 회사에서는 후임자를 구할 때까지만
일하라고 했고 보름 정도 더 일하게 됐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재테크 책 하나를 맡게 됐고,
그 책이 나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그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되는 일 하나 없는 남자에게 부자 천사가 내려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언해주는 재테크 책이었는데 몇 페이지 읽어보니 내용이 꽤 흥미로웠다.
그때 나는 한 책당 7, 8명의 프리랜서 번역가들에게 샘플 번역을 맡기고 이를 취합해 편집부에
전달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샘플 번역이란 책의 정해진 3, 4페이지 정도를 번역해 책의 내용을
파악하고 번역가의 실력도 확인하는 일이다. 보통 샘플 번역을 통해 2, 3명 번역가의 원고를 추리고
이를 출판사에 보내면 해당 출판사에서 원하는 번역가를 선택하게 된다.
이미 퇴사를 앞두고 있던 나는 문득 한 가지가 궁금해졌다.
'나는 한 번도 번역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데 내가 번역을 해보면 어떤 수준일까?'
당시만 해도 이 책을 내가 번역해봐야겠다는 생각은 1도 없었다. 다만 번역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해보면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나는 프리랜서 번역가들에게 샘플을 발송한 뒤 회사에서 짬이 날 때마다 번역가들에게 맡긴 부분과
같은 페이지를 번역해봤다. 샘플 번역을 마감한 뒤 원고들을 모아 편집부에 넘겨줄 때 나는
중간 어디쯤 내가 번역한 원고도 끼워넣었고 담당 대리님께 부탁했다.
"여기 제가 번역한 원고도 있는데요. 혹시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지만 체크해봐주실 수 있나요?"
며칠 뒤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내가 번역한 원고가 책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편집부에서 말했다.
나는 입사한 지 한 달여 만에 퇴사를 하게 된, 어찌 보면 회사 입장에서는 괘씸한 직원이었는데도
회사에서는 내게 이 책의 번역을 맡아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참으로 생각지도 못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덕분에 나는 여러 해 공부하고도 데뷔하기 힘들다는 번역가가 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얼떨결에 번역을 시작하게 됐지만
훗날 나는 모든 우연이 나를 번역가라는 운명으로 이끌었다는 확신을 하게 됐다.
어쨌든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번역을 시작하게 됐고, 다시 영화사로 돌아갔지만
영화일과 번역일을 병행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