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저 중국으로 어학연수 가고 싶어요.”
“뭐? 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네가 돈이 어디서 나서 외국에 가?”
“직장 다니면서 모은 적금 깨서 가려고요.”
“여보, 얘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이번에야 말로 중국어를 배우겠다는 혼자만의 굳은 결심으로 온라인 강의를 들은 지 한 달 만에 부모님께 폭탄선언을 했다. 물론 부모님의 첫 반응은 어리둥절 그 자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직장 얌전히 다니다 곧 시집이나 갈 줄 알았던 딸내미가 난데없이 외국에 가겠다는데 “OK, 떠나라!”를 단박에 외칠 부모님은 드물 테니까.
하지만 짧은 배움에도 한국에서 계속 중국어를 배우면 중도에 포기하겠다는 예감이 뇌리에 꽂히다 못해 머릿속을 푹푹 쑤셔 댔다. 처음 시작한 중국어는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취향에도 맞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나름 언어에는 재주가 있어 영어나 제2 외국어였던 프랑스어의 시험 성적이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딱히 재밌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
그런데 중국어는 시작부터 달랐다. 언어에도 궁합이 있다더니, 어설프게 익숙한 영어와 달리 아예 처음부터 배워서인지 세상 모든 게 다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물론 외워야 할 문법이나 한자가 오만 가지라 짜증이 나고 힘들기도 했지만 싫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재밌고 싫지 않다.’ 현실적으로 말해 세상에 이만큼 좋은 궁합이 있을까?
하지만 나는 나를 너무 잘 알았다. 성격이 소심한 나는 항상 시작이 더딘 데다 끝맺음도 확실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대로 간다면 몇 달 지나지 않아 중국어 공부가 중단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백만 년 만에 내가 좋아 시작했고, 재밌게 배우고 있는 이 외국어를 다른 것들처럼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한 번만이라도 스스로 만족할 만큼 배우고 싶었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건 평생 해도 끝이 없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아.’
의지가 불끈 샘솟자 그 ‘포기’를 막을 아주 극단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무도 한국어를 쓰지 않고, 사방에서 중국어만 들려오는 곳으로 가자! 그럼 어쩔 수 없이 중국어를 배우게 되지 않을까? 적어도 생존은 하겠지.’ 이 단순한 생각이 머리를 꽉 채우자 더 이상 기다리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그날로 부모님께 중국에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시집가야지 어딜 가?”
“갔다 와서 가면 되잖아요. 1년만 배울 게요. 어차피 남친도 없는데요.”
“에이, 그래도 안 돼. 그사이에 생길 수도 있잖아.”
“아이고, 저 양반은. 쟤가? 자기 돈으로 간다는데 그냥 가라고 해요.”
딸의 주제를 잘 알아 의외로 선선히 허락하신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셨던지 좀처럼 허락해 주지 않으셨다. 하지만 딸자식이 계속 고집을 부리니 아버지도 신경이 쓰이셨던 모양이다. 다행히 아버지에게는 귀가 얇아도 몹시 얇다는 장점이 있었다. 며칠 뒤, 친구 분들과 이야기라도 나누셨던지 나를 불러 말씀하셨다.
“누가 그러더라. 요즘 중국어 배우면 나중에 큰돈 번다고. 정 가고 싶으면 갔다 와라.”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툭하면 뒤로 물러서던 나는 머릿속에 완벽한 설계도를 그린 것처럼 필요한 일들을 하나둘 해내기 시작했다. 우선 믿을 만한 유학원을 찾았고, 중국에 가기 전에 중급자 수준의 중국어라도 배우려고 중국어 전문 학원에 등록도 했다. 평소 돈이라면 천 원짜리 한 장도 아까워 벌벌 떨었지만 총재산이었던 1,400만 원을 유학원 등록비와 1년 치 학비, 기숙사비, 생활비, 방학 동안의 여행 경비로 아낌없이 팍팍 투자했다. ‘네 돈으로 갔다 와’가 부모님의 허락 조건이었던 터라 행여 마이너스가 나면 어쩌나 싶어 철저히 소비를 확인하고 계획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창피한 고백이지만 살면서 그렇게 내 힘으로 모든 걸 계획하고 실행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나는 소심함을 방패로 삼아 뭐든 책임지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학연수를 준비하며 등 떠밀리지 않고 내가 좋아서, 내 힘으로 하는 일이 얼마나 속편하고 신나는 일인지를 제대로 깨달았다.
“중국으로 단기 어학연수를 가는데요.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배우고 가고 싶어서요.”
“언제 가시는데요?”
“9월 학기 시작이라 8월 말쯤요. 기초반부터 배우면 어느 수준까지 배울 수 있을까요?”
“음, 한 6개월 정도 남았으니까 일주일에 세 번, 하루 2시간씩 하는 코스로 배우면 중급반까지는 들으실 수 있어요.”
“아, 정말요? 6개월 만에 중급반까지 들을 수 있어요?”
당시 어학연수를 준비하며 가장 신경을 썼던 건 중국어 전문 학원에 다니며 수업을 듣는 일이었다. 여기에는 먼저 학원을 다녀보란 친구의 조언도 한몫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중국에 가고 싶지만 겨우 두 학기 있을 건데 아무 준비도 없이 갔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거 아냐? 또 중급반 정도는 하고 가야 좀 더 빨리 중국어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이런 걱정과 고민 끝에 괜찮은 중국어 학원을 찾았고, 선생님과 마주보며 공부를 하게 됐다. 중국어를 배워 뭘 하겠다는 장기 목표는 없었지만 곧 어학연수를 간다는 분명한 단기 목표가 있어서였을까. 살면서 어느 때보다 높은 집중력 무장한 채 공부에 매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8월, 비행기를 탄 지 두 시간 만에 베이징 셔우두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렇게 고대하던 중국에 왔다는 기쁨도 잠시, 그 뒤 한두 달은 ‘괜히 학원을 다녔나?’라는 회의감을 느껴야 했다. 그런 의심은 학교에 도착한 순간부터 시작됐다.
당시 유학원에서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조선족 직원이 나와 연수 온 학생들의 기숙사 등록과 은행의 통장 개설 같은 일을 도와 줬는데 기숙사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차렸다. 솔직히 말해 내게는 막연한 자신감과 기대가 있었다.
‘그동안 몇 달이나 배운 게 있는데 유학원 직원이랑 기숙사 직원이 이야기를 하면 어느 정도는 알아듣겠지? 두구두구, 드디어 중국어 학원 선생님의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닌 진짜배기 중국어 대화를 듣게 되겠구나.’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션머션머, 션머션머라~”
“에, 션머? 하오러. 션머션머.”
중국어로 ‘어쩌고저쩌고’를 ‘션머션머’라고 하는데, 두 사람 뒤에 서 있던 내게는 정말 딱 그렇게 들렸다.
길지도 않은 대화 몇 마디가 얼마나 초스피드로 지나가는지 내 귀에는 단 한 단어도 정확히 들어오지 않았다.
‘어,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왜 한마디도 안 들리는 거야? 저게 중국어가 맞나? 혹시 나 중국어 못한다고 욕하는 거 아냐?’
순식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와, 이건 뭐랄까? 그야말로 말도 안 통하는 어느 나라에 혼자 뚝 떨어진 기분 그 자체였다. 이런 젠장, 학원의 중국인 선생님은 한국 학생들에게 맞춰 일부러 느리게 말해 준 거였구나? 내 귀에도 또박또박 잘 들렸던 중국어는 수강생을 위한 선생님의 눈물 나는 배려였었던 셈이다. 아무리 그래도 중국에 가면 사람들이 입에 모터 단 것처럼 떠든다고 귀띔이라도 해 주시지.
들릴 거라 믿었던 말이 들리지 않으니 나는 금세 겁쟁이가 되고 말았다. 나름 든든히 준비를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 말도 들리지 않으니 겁이 날 수밖에. 그러자 그동안 모습을 꽁꽁 감췄던 내 안의 소심 대마왕이 깨어났다. 2인실 기숙사 방 배정을 받고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곰곰이 생각했다.
‘학생 식당에 간다. 주문을 한다. 직원이 못 알아듣는다. 그럼 난 어떻게 하지?’
직접 식당에 가서 확인해 보면 될 텐데 지레 겁을 먹었더니 도무지 방밖으로 나갈 엄두가 안 났다. 실제로 나는 꼬박 이틀 동안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하지만 이틀 뒤,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을 지경이 되자 눈이 반쯤 뒤집힐 것만 같았다.
겁은 개뿔, 이러다 정말 죽겠다 싶으니까 어느새 기숙사 앞 서점을 찾아가 빵과 우유를 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지난 6개월 동안 난 대체 학원에서 뭘 배운 거야? 여태껏 공부한 게 다 허튼짓이었나?’
솔직히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사실 자체보다 내가 기울인 노력이 허사가 됐다는 게 너무 속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두어 달 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의 진가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