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빛그림자 Sep 30. 2023

틀리면 어때? 그냥 계속 말하는 거지

어학연수를 한다고 몇 달 수업을 듣다가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그건 바로 아시아 학생들이 유난히 수줍음이 많다는 것이었다. 당시 어학연수를 받던 학교에는 중국어를 배우러 세계 곳곳에서 온 외국 학생들이 많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서양 학생들과 동양 학생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를테면 서양 학생들은 대부분 문법이나 글쓰기에 약한 반면 회화를 잘했다. 반대로 동양 학생들은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 그런지 한자를 쓰거나 문법 문제를 푸는 데에 능숙한 반면 회화가 약했다. 이렇게 동양 학생들이 입을 열지 못하는 건 점잖게 말하면 수줍어서였고, 솔직하게 말하면 체면을 중시하는 동양 문화 때문이었다. 틀려서 창피를 당할까 봐 겁을 낸다고나 할까. 


나 역시 처음에는 그런 학생 중 하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창피 당하는 게 겁난다고 수업 시간에 가만히 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한마디 못한 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는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콜롬비아 친구에게 용기를 쥐어짜 내어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중국어로 말을 잘해?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어?” 

“글쎄? 그냥 틀려도 계속 말하는 거지, 뭐. 어차피 외국어인데 틀리면 어때? 나중에 고치면 되잖아.”


친구의 답은 단순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대답을 들은 순간 정말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좀 틀리면 어때? 어차피 외국인이 중국 사람처럼 중국어를 구사할 수 없는 게 당연하잖아. 꼭 완벽한 중국어를 해야 하나? 아마 여기 사람들은 내가 중국어로 말하는 것만 봐도 대단하다고 할 텐데. 말 한마디 안 하느니 틀리더라도 하는 게 나은 거 아냐? 틀리면 어디가 틀린지 알고 고치면 되지.’ 

친구가 툭 던진 한마디에 나는 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잘해야 한다,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자 훨씬 쉽게 입을 뗄 수 있었다. 또한 일단 말문이 터지니 친구들도 더 많이 사귈 수 있었고, 중국인과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됐다. 심지어는 토론 수업 중에 서양 친구들과 삿대질을 주고받으며 격렬한 토론을 벌이는 일까지 가능해졌다. 물론 소심한 성향 자체가 어디로 가는 건 아니다 보니 지금도 먼저 입을 여는 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그게 중국어란 이유로 망설이는 일만큼은 없어졌다.      


어학연수 초반, 말문이 열리지 않는 것만큼이나 고민한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귀가 트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세경, 교과서 15페이지 좀 읽어 봐라.” 

“예?”

“교과서 15페이지 좀 읽어 보라고.” 

“아, 저… 그게…….” 


처음 한두 달은 수업 중에 선생님은 뭘 하라고 시켜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럴 때면 선생님이 혼내는 것도 아닌데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떨려서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런 젠장, 뭔 말인지 알아들어야 하라는 대로 하지.’ 오지게 속이 상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자꾸 위축되느니 스스로 중국어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사람이 하는 말인데 귀에 잘 들리지 않는다는 건 결국 익숙하지 않아서일 테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익숙해질 수 있을까? 이를 위해 나는 어떻게든 창피를 무릅쓰기로 마음먹었다. 


“정세경, 션머션머, 션머야.” 

“예? 선생님 못 알아들었어요. 천천히 한 번만 더 말씀해 주실래요?” 


‘모르겠어요’, ‘못 알아듣겠어요’, ‘다시 말해 주세요’ 

결심이 선 뒤에는 이 말들을 나만의 무기로 삼았다. 실제로 상대의 말을 못 알아듣는 상황이 있을 때면 이 세 가지 말을 마법의 주문처럼 외웠다. 그럼 진짜 불친절한 사람이 아닌 이상 누구나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들려 줬다. 그렇게 같은 말을 또 듣다 보면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려 아는 단어나 문장이 귀에 제법 들어왔다. 


물론 모르거나 못 알아듣는 것은 여전히 창피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견디게 되니 진짜 몰라서가 아니라 괜히 굳어 버린 탓에 놓쳤던 단어나 문장들이 꽤 많았음을 깨달았다. 초짜가 뭘 얼마나 유식하다고 아는 것들마저 놓쳤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기도 했다. 


그렇게 두어 달 창피함과 싸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귀도 트였다. 적어도 아는 단어를 못 알아듣는 일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 무렵, 이런 생각도 들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더니, 한국에서 6개월 배워 온 게 아주 헛일은 아니었네. 중국에서 처음 중국어를 배웠으면 이렇게 빨리 귀가 트이고 말문이 열리지는 않았을 거 아냐.’ 내가 기울인 노력과 투자가 헛된 돈 낭비, 시간 낭비는 아니었던 셈이다.


중국에 있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중국어를 잘 못 알아들을 때면 어쩐지 불안하고 두려움이 앞선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도 결국 버텨 내는 사람이 이기는 법, ‘우리말이든 외국어든 언어는 습관인데 아직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거겠지.’라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어차피 외국어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인 만큼 꾸준히 길들이면 될 테니까. 콜롬비아 친구의 조언처럼 틀려도 계속 듣고 말하다 보면 내 실력도 차곡차곡 쌓이겠지. 

이전 05화 소심 대마왕, 내 돈으로 어학연수 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