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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그림자 Sep 30. 2023

도·레·미·파·솔, 턱 운동이 이렇게 신날 일이야

‘으응? 50강짜리 강의가 벌써 다 끝났다고?’ 

국영 오빠를 떠올리며 시작한 온라인 기초 중국어 강의는 두 달이란 시간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진짜야. 하루에 한 강씩 듣는 건데 회사 다니면서 듣다 보니까 금세 다 들었더라고. 어렵지도 않던데. 나 아무래도 중국어 천재인가 봐. 제대로 배우려면 중국이라도 가야겠어.” 

“뭐어? 근데 두 달 중국어 배우고 중국 간다고 하는 건 오버 아니야?” 

“너도 내 성격 알잖아. 워낙 유리 멘탈이라 또 몇 달 지나면 포기할지 몰라. 요번엔 정말 네이티브처럼 대화하는 정도로는 배우고 싶단 말이야.”

“와, 그 정도로 재미있어? 네가 뭐 배운다고 이렇게 두 팔 벗고 나선 거 처음 보는데.”

“그런가? 재미있다 싶으니까 욕심이 나네, 헤헤.” 

“그럼 당장 중국에 갈 순 없으니까 학원이라도 먼저 등록하면 어때?”

“그럴까?” 


인터넷으로 중국어 강의를 들은 지 두 달 만에 갑자기 중국에 가겠다고 했더니, 제일 친한 대학 동기 녀석이 침착하라며 말리고 나섰다. 나름 이성적인 나보다 몇 배는 더 이성적인 친구의 조언인지라 흘려듣지 않고 집 근처 중국어 전문 학원에 등록을 했다. 사실 중국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이미 어학연수 갈 준비를 시작한 뒤였지만. 행여 친구가 놀랄까 봐 그 사실은 일단 비밀에 붙여 놓았다. 아마 친구는 ‘저 계집애, 평소 하던 대로 몇 달 저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학원에 등록하고 나서야 나는 외국어 공부란 게 새삼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미 온라인 강의로 다 들은 내용인데 병음이며, 성조 같은 기초 개념이 혼자 배울 때와는 달리 높은 벽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중국어를 읽으려면 발음 부호인 병음을 외워야 하는데, 보기에는 영어의 발음 기호와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발음이 다른 병음이 상당히 많다. 때문에 초장에 열심히 외우지 않으면 중국어도 아닌 그렇다고 영어도 아닌 요상한 발음으로 중국어를 말하기 십상이다. 그나마 병음은 무작정 외우고 또 외우다 보니 어떻게든 익힐 수 있었다.      


문제는 바로 성조였다. 성조란 오르락내리락하는 ‘소리의 높낮이’를 말하는데 중국어가 리드미컬하다든지 시끄럽게 들리는 이유가 바로 이 성조 때문이다. 혼자 이 성조를 공부할 때는 비교 대상이 없다 보니 소리를 잘 내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막상 학원에서 강의를 들어 보니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내가 외운 성조가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는지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 번 제멋대로 익힌 성조는 쉽게 고쳐지지도 않았다. 나름 두 달 배운 중국어를 다시 ‘0’부터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선생님께서는 중국어의 성조를 정확히 익힐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알려 주셨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중국어의 성조는 4성으로 이뤄져 있는데 연습할 때 턱을 많이 쓰시면 좋아요. 우선 1성은 피아노로 치면 도 ․ 레 ․ 미 ․ 파  ․ 솔 여기 ‘솔’에 맞추면 되는데요. ‘아’를 발음한다고 해 볼까요? 아 ․ 아 ․ 아 ․ 아 ․ , 이걸 ‘솔’음에 맞춰 턱을 옆으로 쭈욱 돌리시면 돼요.”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수강생들과 함께 피아노‘솔’음에 맞춰 ‘아’ 소리를 내며 턱을 옆으로 반듯이 돌렸다. 무작정 ‘아’라고 소리 낼 때보다 몸을 쓰니 확실히 기억하기에 좋았다.  


“2성은 도 ․ , 여기 ‘레’에서 ‘솔’로 부드럽게 올리면 되는데요. 소리를 올릴 때 이렇게 턱도 함께 위로 쓰윽 올리시면 돼요. 2성으로 ‘아’를 해 볼까요?” 

“아아.” 


다들 아기 새처럼 연신 턱을 치켜올린다며 정신이 없었다. 혼자 하라고 시켰다면 민망했을 턱 놀림이었지만 여럿이 하니까 부끄러운 기분도 확 줄어들었다. 오히려 안 따라하면 바보처럼 보일 것 같았다. ‘이래서 외국어를 여럿이 배우라고 하나?’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4성 중에 이 3성이 가장 어려운데 ‘레’에서 ‘도’로 떨어졌다가 ‘파’로 끌어올리면 돼요. 어려우면 그냥 턱을 두턱을 만드는 것처럼 아래로 꾸우욱 내렸다 잽싸게 올리세요.” 


수강생들은 선생님의 ‘아’에 따라 턱을 아래로 깊이 내렸다 다시 올린다고 난리였다. 턱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때마다 어깨도 들썩거려 꼭 덜컹거리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만 같았다. 뒤에서 봤다면 그 모습이 퍽 우스웠겠지만 성조를 익히는 데에 도움이 된다니 모양새가 망가지는 것쯤은 신경 쓸 새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4성은 ‘솔’에서 ‘도’로 단번에 내리꽂으시면 돼요. 포크로 세게 푹! 내리찍는 것처럼요. 다시 ‘아’로 4성을 해 볼까요? !” 

!” 


태권도 시합에라도 나온 것 마냥 우렁찬 ‘아’ 소리가 강의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렇게 1, 2, 3, 4성을 익히기 위한 턱 운동은 강의 시간마다 한동안 계속 됐다. 몸에 익을 만큼 습관이 돼야 자연스럽게 올바른 성조로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중국어를 배운다고 나온 학원에서 이렇게 턱관절 운동을 많이 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이 턱 운동은 집에서도 틈만 나면 이어졌다. 심지어 나는 혼자서도 흥이 제대로 난 랩퍼처럼 까딱까딱, 흔들흔들 무시로 턱을 흔들어 댔다. 열심히 따라 해야 더 빨리 내 것이 될 거라 생각에 말라 버렸던 열정이 마구 샘솟기 시작한 것이다. 열정이라니, 취직할 때 도움이 된다기에 대학 시절 3년이나 다녔던 영어 학원에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 등 떠밀려 다녔던 직장에서는 더더욱 찾을 수 없는 감정이었고. 그런데 국영 오빠가 좋아서 별별 홍콩 영화를 다 찾아 봤던 중고등학교 때나 느꼈던 그 감정이 중국어를 배우며 다시 살아나다니. 


내가 좋아하는 걸 배운다는 게 이런 걸까? 사소한 배움 하나하나에 완전히 잠들었던 열정 세포들이 깨어나며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서서히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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