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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그림자 Sep 30. 2023

장국영 오빠가 소개해 준 중국어

중학교 2학년 시절, 여름이었나? 몇 명 되지도 않는 친구 중 하나가 말했다. 

“오늘 내 생일인데 우리 집 올래?” 

뜬금없는 생일 초대라 선물도 챙기지 않았고, 그 흔한 생일 케이크도 없었다. 그저 친한 아이들 몇 명이 

좀비처럼 친구의 집에 모여들어 자장면을 시켜 나눠 먹은 게 전부였다. 그러다 생일을 맞은 친구가 말했다. 


“오빠가 빌려 놓은 홍콩 영화 있는데 볼까?” 

“심심하니까 뭐라도 틀어 봐.” 


그런데 별 기대도 없이 자장면이나 씹으며 멍하니 화면을 보던 나는 이내 샛별처럼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화면 속에서 내 인생의 우상인 장국영(張國榮)과 처음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게 운명인 걸까? 연예인의 ‘연’자도 관심이 없었건만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세상에 저렇게 아름답게 생긴 남자도 다 있나?’ 

그것이 국영 오빠를 본 나의 첫 감상이었다. 

영화 제목은 <영웅본색2(英雄本色 Ⅱ)>, 홍콩 암흑가에서 피어난 세 남자의 우정의 의리를 다룬 영화라는데 솔직히 내 눈에는 장국영 오빠 하나 밖에 안 들어왔다. 특히 공중전화 박스에서 피 묻은 손으로 수화기를 꼭 쥔 채 아내와 통화를 한 뒤 딸아이의 이름을 지어 주고 죽어 가던 모습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심지어 당시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새어 나오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와 씨, 이 영화 뭔데 이렇게 슬퍼?’ 

남 앞에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라 괜히 머쓱해하며 옆을 보니 다행히 친구들도 감수성 충만한 ‘중2’였다. 다들 얼마나 울고불고 난리인지 덕분에 나도 퉁퉁 부은 눈두덩이로 당당히 집에 컴백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뭐에 홀린 것처럼 홍콩 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영 오빠의 출연작들을 보고 싶어서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홍콩 영화 자체를 즐기게 됐다. 이런 나의 홍콩 영화 사랑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 쭉 이어졌는데 아마 못해도 100편이 넘는 홍콩 영화를 섭렵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죽어라 홍콩 영화를 보다가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영화 속 저 배우들이 대체 뭐라고 하고 있는 거야?’ 물론 화면 아래에는 자막이 달려 있었지만 그건 번역된 문장일 뿐, 실제로 배우가 하는 말을 원어로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만약 우리 국영 오빠가 하는 말을 제3자가 적어 준 자막이 아닌 내 두 귀로 알아들을 수 있다면 정말 얼마나 신이 날까.


사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계기가 있었는데, 그날도 평소처럼 홍콩 영화 한 편을 보고 있으려니 이런 자막이 나왔다. 


‘에라이, 이 영구와 땡칠이 같은 녀석아!’ 


으응? 영구와 땡칠이라고?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영구와 땡칠이는 우리나라 코미디에 나오는 심형래랑 강아지인데 어떻게 홍콩 영화에 ‘영구와 땡칠이’란 자막이 달릴 수 있지? 뭘까? 대체 저 배우들이 뭐라고 했기에 이런 자막을 단 건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중국어에 대한 내 첫 호기심이었다. 물론 그때만 해도 십 몇 년 뒤 그토록 낯설었던 언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사람이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당시 나는 그저 친애하는 장국영 오빠와 짧은 대화 몇 마디라도 나눠 보고 싶은 팬심 가득한 소녀에 지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국영 오빠?”

“그래, 안녕. 우리 예쁜이, 밥 먹었어?” 


크흡, 실현 가능성이 0에 가까웠지만 혹시나, 행여나, 만에 하나 국영 오빠와 중국어로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은 세상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가장 쉬운 방법이 외국인과 연애하는 거라고 했지만 팬심이나 연심이나 한 끗 차이일 뿐. 그때부터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소망이 마음속에서 몽글몽글 솟아나기 시작했다. 


기다려요, 국영 오빠. 제가 중국어 배워서 언젠가 꼭 홍콩으로 만나러 갈게요!  

두근두근, 외국어는 내게 좋아하지만 말 한마디 통하지 않던 사람과 눈으로, 귀로, 입으로 소통할 수 있으리란 설렘 어린 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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