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빛그림자 Sep 30. 2023

끝나지 않은 인연, 다시 만난 중국어

‘장국영 투신자살’, ‘장국영 만우절 거짓말처럼 세상 떠나’제목만 조금씩 다를 뿐 모든 스포츠 신문 1면에 장국영의 자살 소식이 톱뉴스를 장식하고 있었다. 


‘뭐지? 국영 오빠가 새 영화를 찍었나? 근데 국영 오빠가 영화를 찍는 게 온통 1면을 장식할 일이야?’ 


멀쩡한 기사 제목을 보고도 나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국영 오빠가 죽다니, 그것도 자살이라고?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미스 정, 스포츠 신문 정리해서 사장님께 가져다 드려요.” 

“예, 알겠습니다.” 


스포츠 에이전시에서 성격에도 잘 맞지 않는 비서로 근무하고 있던 때였다. 

매일 아침 나는 대여섯 개의 스포츠 신문을 정리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2003년 4월 1일, 평소처럼 사무실로 배달된 스포츠 신문들을 정리한다며 각 신문의 1면을 펼치다 

전혀 뜻밖의 헤드라인들을 마주하게 됐다.  


애써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기사를 읽어 보니 정말로 국영 오빠가 호텔 건물에서 뛰어내려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 맞은 기분이 들었다. 잘 지내겠지 하며 잊고 지낸 첫사랑이 실은 내 생각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더라는 소식을 들으면 이런 기분일까? 나는 고작 국영 오빠의 많고 많은 팬 중에 하나였을 뿐인데도 그동안 오빠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후회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 왔다.  


순간, 오로지 국영 오빠가 좋아서 봤던 수많은 홍콩 영화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영웅본색2, 야반가성, 아비정전, 백발마녀전, 천녀유혼, 패왕별희, 동사서독, 금지옥엽, 해피 투게더, 종횡사회, 금옥만당……. 오빠가 나오는 영화라면 결단코 취향이 아닌 3류 코미디 영화도 몽땅 찾아보며 환호했다. 감정에 무딘 편이었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면 바보가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그때 알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은근과 열정을 바쳐 좋아했던 국영 오빠가 세상을 떠난 날, 마음 한구석에 고이 간직하고만 있던 내 화양연화도 끝이 난 것 같아 아쉽고 또 슬펐다. 문득 영화 <아비정전(阿飛正傳)>속 대사가 떠올랐다. 


“세상에는 발이 없는 새가 있어. 그 새는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쉬지. 그런데 그 새가 딱 한 번 땅에 발을 디딜 때가 있어. 그게 바로 죽을 때야.”


영화 속 주인공인 아비의 대사처럼 지친 국영 오빠는 땅에 발을 디뎠고,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안녕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6개월 뒤, 몸은 편해도 머리가 공허한 직장 생활을 이어가던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메일 한 통을 받았다. 홍보성 내용만 잔뜩 담긴 메일이었으니 흔히 말하는 스팸 메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날따라 유독 그 메일의 내용에 눈이 갔다.


‘중국어 온라인 강의를 들으면 교재가 공짜!!!’


인터넷으로 강의를 들어? 그럼 시간 맞춰 학원에 안 가도 되는 건가? 학원 강의보다 수강료도 훨씬 싸다고? 거기다 강의를 신청하면 교재가 공짜란 말이야? 지금이야 이리 치이고 저리 구르며 살다 보니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인생의 진리를 아는 나이가 됐지만 스물일곱 살에, 3년차 사회인은 그런 걸 알 턱이 없었다. 작은 회사를 다니며 얼마 안 되는 월급에 돈 한 푼이 아쉬웠던 나는 ‘공짜’란 단어에 단단히 꽂혔다. 


‘밑져야 본전인데 한번 들어 봐?’ 

회사 다니는 것도 귀찮았던 인생에 자발적으로 뭔가 다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물론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 배움의 대상이 ‘중국어’였기 때문이다. 우리 국영 오빠와 간단한 말이라도 통하면 좋겠다 싶어 배우고 싶어했던 바로 그 중국어를 배워 보라니 당연히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사실 그때 중국어는 내게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첫사랑이나 다름없었다. 가슴이 떨렸던 기억만 남아 얼굴도 흐릿하고,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도 모르는 그런 첫사랑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기특한 생각을 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생각은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당시 나는 중문과에 가야 중국어를 배울 수 있다고 철석 같이 믿는 고지식한 아이였다. 그에 비해 내 성적은 뜨는 학과였던 중문과에 지원하기에는 아주 턱없이 겸손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수능마저 망치고 말았다. 결국 점수에 맞춰 희망한 적도 없던 국문과에 가야 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장국영 오빠와 중국어로 대화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으로부터 빠르게 멀어져 갔다.


아마 진짜로 배우고 싶었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았을 텐데 그러지도 않았다. 좋아한다고 열을 올렸지만 막상 제대로 된 고백도 하기 전에 제 풀에 맥이 빠져 버렸다. 그렇게 의욕이 꺾이니 중국어는 일부러 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추억 속 첫사랑은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생각하며 그냥 마음 편히 살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충격 그 자체였던 국영 오빠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반 년 만에 중국어를 배워 보라는 스팸 메일을 받게 된 것이다. 그날이 그날 같던 무료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불현듯 다시 국영 오빠와 옛날 추억들을 떠올리게 됐다. ‘아, 맞아. 나 그때 중국어 배우고 싶어 했지? 제대로 중국어 배워서 국영 오빠 만나러 홍콩으로 날아가려 했는데.’


메일을 보는 내내 완전히 끊어진 줄만 알았던 인연이 우연찮게 다시 이어진 기분이 들었다. 이 인연을 이어갈지 말지는 오로지 나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국영 오빠가 가고 없으니 오빠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소망도 이룰 수 없게 됐지만 어쩐지 욕심이 생겼다. 


‘중국어를 배워 보자.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배울 기회가 없을지 몰라.’ 


물론 중국어가 배우고 싶었던 게 꼭 국영 오빠 하나 때문은 아니었다. 당시 나는 수많은 발자국이 남겨진 넓은 길을 관성처럼 따라 걷고 있었지만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는 반발심도 있었다. 남들 다 간다고 나도 꼭 그 길로만 가야 하나? 서른도 안 됐는데 아직 다른 길로 가 볼 여지가 있는 거 아닐까? 무엇보다 적성에도 안 맞는 사무실 근무에 지친 터라 그때가 아니면 새로 뭔가 해 볼 기회가 없겠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평소 식사 메뉴 하나 쉽게 고르지 못할 만큼 우유부단한 편이었지만 다행히 좋아하는 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멍청이는 아니었다. 


난데없이 중국어라니, 이런저런 문제를 따지고 잴 법도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깊게 고민하면 시작만 어려워질 것 같았으니까. 


‘중국어 배우면 어디에 쓸모가 있어요?’, ‘중국어 잘하려면 얼마나 배워야 해요?’, ‘AI가 발달하면 번역기 때문에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던데 지금 배우면 늦지 않나요?’, ‘중국어 배우면 얼마나 벌 수 있어요?’


시작도 하기 전에 이렇게 온갖 문제를 다 고민하는 사람들 중에 실제로 중국어를 제대로 배우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다’ 생각하고 무작정 저지르고 보는 것도 괜찮다. 특히 그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중국어를 배워 뭘 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는 없지만 일단 결심이 서니 곧장 중국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전 02화 장국영 오빠가 소개해 준 중국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