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시와 관계를 끊고 처음 번역했던 작품이 '야옹야옹 고양이 대백과'란 책이었다.
직접 기획안을 쓴 책은 아니고 출판사에서 번역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보내 번역을 하게 됐다. 수동적이든 자동적이든 여러 해 동안 번역을 하며
쌓아온 커리어가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세상에 쓸모 없는 경험은 없다고
하나보다. 번역료 단가는 썩 마음에 차지 않았지만 내가 따낸 첫 일감이란 사실에
만족했다. 그런데 그렇게 따낸 일감치고는 꽤 사이즈가 큰 작업이었다.
그 책이 바로 이 책이었는데 왼쪽이 타이완 책이고, 오른쪽이 번역한 책이다.
애완동물이라고는 금붕어와 병아리 밖에 키워보지 않은 내게 고양이에 관련된 책은
대단한 도전이었다. 게다가 이 책은 제목의 '대백과'를 통해 알 수 있듯 고양이에 관한
A에서 Z까지 망라된 책이다 보니 입양에서 죽음까지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오고, 전문용어나
의학용어도 상당히 많이 등장했다. 269페이지 짜리 책을 번역하니 399페이지 짜리 책이 됐다.
중국어는 뜻글자에 띄어쓰기가 없다보니 번역을 하면 보통 1.5배~2배 정도 늘어난다.
아무튼 고양이라고 해봐야 동네 길고양이 밖에 몰랐던 나였기에 이런 책이 정말 팔리나
궁금했지만 지금까지도 고양이 집사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책이라고 한다.
이 작업에 용기를 얻은 나는 직접 해외로 나가 번역할 책을 골라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요즘은 인터넷 시대라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고를 수도 있지만 직접 서점에 방문해
눈으로 봐야 내가 번역하고 싶은 책을 고르기 쉬울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무작정 중국으로 날아갔다. 큰 서점에 죽치고 앉아 이런저런 책들을 보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한국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자기계발서나 심리학, 아동서 등을
고르다 보니 10권도 넘게 한국에 가져 오게 됐다. 물론 10권이면 10권 다 출판 기획안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막상 한국에 가져와 읽어보니 우리나라 사람들 정서에 안 맞는 것도
있고, 중언부언 내용에 핵심이 부족한 책도 있었다. 게다가 물리적으로도 10권이나 되는
책들을 다 읽고 기획안을 쓰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 책이라고 쉽게 출판사들의 선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출판 기획안이란 번역가가 국내에 소개하고 싶은 책을 출판사에 소개하는 안내서인데
보통 번역가들이 10군데 출판사에 기획안 하나를 보내도 제대로 된 답장은 4, 5곳 밖에
오지 않는다. 당연히 처음 기획안을 보낼 때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겠지하는 꿈에 부풀어
있기 때문에 출판사에서도 금방 연락을 주리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출판사에는 하루에도 여러 건의 출판 기획안이 도착하고, 번역 에이전시에서 소개하는 책들이
쏟아지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기획안을 확인하기도 어렵고 그만큼 답장을 받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초보 번역가들은 이제나저제나 하며 연락을 기다리기 마련이다.
혹시 예비 번역가분들이 이 글을 본다면 기획안을 보낸 뒤에는 보냈다는 사실도 잊고 있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다고 조언해주고 싶다.
실제로 내가 기획안을 썼던 책 중 하나는 2년 뒤에야 주인을 만나기도 했다.
분명 제목이나 컨셉이 좋은 책이었고 출판 기획안을 몇 군데 보내고 사흘 만에 3곳의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는데 다들 막판에 가서 손을 놓아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래도 아까운 마음에 가끔 그 책의 기획안을 비슷한 책을 내는 출판사에 보내곤 했다.
그런데 2년 만에 출판을 하고 싶다는 출판사가 나선 것이다.
그 책이 바로 이 책인데 원제목은 '매일 읽는심리학'이었지만 출판사에서 제목을
'매일 심리학 공부'로 바꾸고 편집자가 중언부언하는 본문 내용도 상당 부분 삭제했다.
덕분에 다양한 심리학 정보가 담겨 있다는 컨셉이 좋아 골랐던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다.
남들이 주는 일감이 아닌 내가 선택하고 기획안을 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 받는 책이 됐을 때
느끼는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요즘도 나는 1년에 한두 번은 책을 고르러 중국이나 타이완, 홍콩으로 서점 투어를 떠난다.
보통 비행기값이 저렴한 5월이나 9월쯤에 2박3일, 3박4일 일정으로 가는데
외국이라고 나가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서점에서 다리 아프게 서서 책을 보는 데에
보내기 일쑤다. 늘 나갈 때는 될 만한 책, 번역하고 싶은 책만 서너 권 골라와야지 하는데
들어올 때는 책들을 한 보따리 지고 오게 된다. 실제로 그 책들 중에 기획안을 보내고
출판사에 선택되는 책은 한두 권, 많아야 두세 권 정도다. 그래도 내가 고른 책들이
출간이 확정되고, 번역을 하고, 서점 매대에 놓이게 되면 그 동안 했던 고생이 다 의미가
있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이번 달에도 나는 책을 고르러 타이완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