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도 아닌데

by 달빛그림자

실생활에서는 별로 볼 일이 없지만 TV 속에 등장하는

깡패들은 으레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 그뿐인가?

그들의 반질반질한 실크 셔츠 밑으로는 항상 용이나

호랑이 같은 센 동물들이 시커멓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보통 사람들은 누구나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온몸을 휘감는 동물들을 자랑하며

어깨에 힘을 빡 주는 것도 바로 누군가의 기를 죽이고

강한 척, 센 척하려는 의도가 아니겠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강한 척, 센 척하는 사람일수록

약한 모습을 감추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없는 면이 있기에 다른 부분을 지나치게 확대해

덩치가 크고 강한 것처럼 과장한다고나 할까.

그런데 최근 쓴 글들을 가만히 되짚어 보니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글을 마무리할 때마다 '~하면 어떨까?', 혹은 '~해보자.'라는 식의

힘을 잔뜩 준 어미들이 등장했다.


내가 뭐라고 자꾸 뭘 하자고 고래고래 구호를 외친단 말인가.

이것은 "이 연사 ~하자고 강력히 외칩니다!"라는 식의 웅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어린 시절 교육의 폐단일 수도 있고,

글을 마무리지을 때 딱히 할 말이 없는데도 뭔가 있어 보이려는

수작일 수도 있다. 물론 진짜 나를 비롯한 사람들 모두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언사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글에 힘이 들어간 것처럼 빳빳하고 딱딱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는 의식적이든 아니든

뇌가 긴장하고 그 주름에 힘이 들어가 있다는 뜻이리라.

물론 이곳에 올리는 글이 나 혼자 보고 마는 낙서장이 아니니

글의 형식이라든지 하고 싶은 이야기, 하다못해 맞춤법까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면 그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뇌주름에 힘을 팍팍 줘가며

뭔가를 자꾸 주장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수록 조바심이 들게 되고,

더 나은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들수록 무리수를 두게 마련이다.

어제 문득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내가 즐거운' 글쓰기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두 번째 매거진인 '내 이야기가 이야기가

될 때'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날그날 글을 쓸 때마다 하고 싶은

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는데 요즘은 '오늘은

뭘 써야 되지?'억지로 머리를 쥐어짜내는 날들이 많았다.

할 말이 없는데도 애면글면 쓰다보니 글에도 힘이 잔뜩 들어가버린 것이다.


물론 쉽게 잊어버리는 내 성격상 내일이면 다시

'~하면 어떨까?'라는글을 쓸 확률이 높지만

오늘의 글만큼은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무슨 사회운동가나 계몽가, 그렇다고 깡패도

아닌데 뭘 하자고 목소리 높이지 않으면 어떠랴.

그냥 가을 바람처럼 선선하게 슬쩍 지나치는 글이라 해도

썼으면 그만이지. 중간중간 딴짓을 하기도 했지만 다 쓰려면

2, 3시간은 걸리던 글이 오늘은 1시간 만에 써진 걸 보니

뇌에 조금은 힘이 빠진 모양이다. 좋은 글 쓰고 싶다고

미간 사이에 꽉 잡혀 있던 주름도 펴지고 입가에 빙긋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 오늘은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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