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중입니다

by 달빛그림자

엊그제 책 번역 한 권을 끝내고 약간 손을 본 뒤 어제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바로 이어서 번역할 책이

두 권 있지만 마감에 맞춰 예약해놓은 호텔에 얼마 전

직장을 그만 둔 친구와 호캉스를 하러 간다.

나와는 성향이 다른 친구는 호캉스가 왜 좋냐고 물었지만

하루 종일 집에서 일하는 나는 집밖을 벗어나 하루 자고

오는 것만 해도 리프레시가 된다. 이게 바로 나의

소확행이랄까? 사실 집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 하루라도

벗어나고 싶은 기분도 있다. 오래 알고 지내도 사소한

속내까지 털어 놓는 친구는 아니라 얼버무렸지만

역시 호캉스는 조용히 혼자 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행이란 게 늘 마음이 딱 맞는

사람하고만 떠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때로는 원래 가려던

친구가 못 가 다른 친구와 가기도 하고, 함께 가자고 했다

혼자 떠나기도 하고, 성향이 다른 사람과 갈 때도 있다.

하지만 여행에는 늘 변수가 있기에 뜻밖의 동행을 통해

뜻밖의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아니, 계획과 다른

여행에서 짜증나는 상황을 만나거나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모르는 사건을 당한다고 해도 그 역시 여행의

일부분이며, 우리는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의 인생 전체도 긴 여행이라 한다면 살면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지 않던가. 사람은 늘 계획을 세우지만 인생은

늘 서프라이즈를 준비해둔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또

나쁜 것이든. 우리는 환히 웃을 수도 있고 놀라서 자리에

주저앉을 수도 있으며 당황해 울음을 터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서프라이즈는 잠시이며 우리는 계속 하던 여행을

해야 한다. 그것이 여행자의 본분이기에. 어떤 이유로든

한곳에 머물려고 하면 여행은 끝을 낼 수 없다.


또한 여행을 하다 화장실을 만나면 일단 들르고 봐야한다.

이 화장실이 지저분해 보인다고, 좀 더 참을 수 있을 거

같다고 화장실 가는 일을 미루면 결국 낭패를 보게 마련이다.

이 화장실은 우리의 인생에 간절히 바라던 것일 수도 있고,

당장은 아니라도 꼭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일일 수도 있다.

나중에 더 좋은 것이 나올까봐, 지금 당장 귀찮다고 미루면

화장실에 가지 못한 당신이 어떻게 될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리라.


물론 나는 지금 기분을 리프레시할 기분 좋은 여행에 나섰다.

그리고 짧지만 즐거운 여정을 즐길 작정이다.

하지만 이 여행이 끝나면 또 어떤 행선지가 날 기다리고

있는지,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다. 내가 20대의 푸릇한 청춘이라면 스스로 즐거운 여행을 하라고

하겠지만 중년의 지금은 어떤 여행이든 피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내 여행이 남들보다 많은 비를 맞고 발목이

진창에 빠지는 여행이라 해도 말이다. 그래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나는 편안한 호텔에 들어가 뜨끈한 물로 샤워한 뒤

잠시라도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다시

다음 행선지를 향해 떠나겠지.


좀 전에 한참이나 버스를 기다리다 누군가에게 물어본

뒤에야 맞은편으로 건너 가서 타야 하는 걸 알게 됐다.

이렇게 인생은 엉뚱한 곳을 헤매기도 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제 갈길을 찾을 수 있기도 하다.


드디어 호텔에 입성했다. 저렴한 가격에 정확히 어디인지도

모르고 덜컥 예약했다 오는 길이 험난하긴 했지만 기분은

벌써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변수가 많은 여행이라도

떠날 곳이 어딘지는 한번쯤 점검해야 길을 잃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드디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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