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함의 장점

by 달빛그림자

세상에는 알고 보면 수많은 소심쟁이들이 살고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별처럼 많은 소심쟁이들이 암암리에

활동 아니, 살아가고 있다. 소심하다보니 소심하다고

말하지 못해 활달하고 적극적인 사람들처럼 눈에 띄지

못할 뿐 실제 소심쟁이들의 수는 유쾌, 발랄, 쾌활, 명랑,

긍정꾼들보다 훨씬 많을지 모른다. 아니, 그렇다.


물론 나도 그런 소심쟁이 중의 하나다. 그런데 예전에 비하면

요즘은 스스로 소심쟁이란 정체를 커밍아웃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기 브런치 안에서만 봐도 소심함을 주제나 소재로

글을 쓰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내가 딱히 '소심함'을 위한

매거진을 만들지 않아도 소심쟁이들의 활약은 차고도 넘친다.

뭐, 어쩌면 익명성 뒤에 숨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과 얼굴을 대면할 일이 없으니 나름 대담해지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소심함이란 지난날 우리에게 자랑할 만한 덕목이나

성격이 아니었다. 적극적이고 남 앞에 서길 좋아하며 무슨

일이든 주도하는 것은 긍정의 범주에 들었지만 한 발 뒤로

물러나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쉽게 얼굴이 빨개지거나

뒤에서 일하는 것은 부정의 범주에 들었다. 소심함은 숨기거나

교정해야 할 대상이었다. 실제로 소심한 아이는 부모의

걱정거리였으며 친구들의 놀림거리였고, 사회생활의 장애물이었다.

지금 이순간도 자신의 소심함을 자책하며 책상에 머리를 박는

사람이 여럿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소심 오브 소심쟁이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최근 소심쟁이들의 커밍아웃이 잦아지면서 소심함의 순기능,

장점도 다수 드러나고 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주도권을 잡았을 뿐

목소리가 작은 사람도 긍정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테면 소심한 사람은 책임감이 강하다. 자기가 맡은 일을 남에게

미룰 수 없으니 어떻게든 완성하려고 누구보다 노력한다. 게다가

자신의 일을 어영부영 할 수 없으니 최대한 흠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번역을 하는 직업을 가진 나 역시 이런 성격 덕에 십 년 넘게

일하면서 일의 마감 기간을 어겨본 적이 없다. 이는 신뢰의 문제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맡은 일을 제때에 끝까지 잘하니 신뢰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또한 소심한 사람은 대체로 성격이 세심해 일을 꼼꼼하게 하는 편이다.

자신이 한 작업에 틀린 것이 없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 어디로 여행을

가더라도 확실한 계획을 세워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손실이 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제1플랜이 어그러질 때는 제2플랜도 생각해두는

사람이 꽤 있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과는 효율 면에서

큰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누군가는 쪼잔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지들(?)이나 남한테 피해주지 말고 잘하라지.


뿐만 아니라 소심한 사람은 감성이 예민한 경우가 많기에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거기다 말수도 많지 않기 때문에

즐거운 대화든 고민이 많은 대화는 이야기를 나눌 상대로는 이만한

사람이 없다. 솔직히 말해 사람들은 대화라고 해도 자신이 상대보다

많은 말을 하길 본능적으로 원한다. 하지만 소심한 사람들은 조용히

들어주는 경우가 많으니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만한

대화 상대가 있을 수 없다.

또한 소심한 사람은 가족이나 친구, 지인 등의 기쁜 소식에는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가슴 아프고 머리 아픈 문제에는 내 일처럼

해법을 함께 고민하기도 한다. 게다가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 비밀보장도

제법 철저하다.


소심한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생각이 많기에 집중력이

높은 편이고 덕분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도 많다.

이를 테면 그림이나 글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 중에는 소심쟁이들이

꽤 많다. 산으로 바다로, 와인 특강에 심리학 강의, 마라톤 클럽에

여행 동아리 등 잡다한 외부활동이나 취미가 많지 않기에 오롯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해 높은 성과를 얻게 된다.

실제로 적극쟁이들이 몇 년이나 걸려 습득할 일을 우리 소심쟁이들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습득하기도 한다.

나 또한 중국어 전공자가 아닌데 1년 반 배운 중국어로 번역을

하게 된 데에는 이 소심한 성격이 단단히 한몫을 했다고 확신한다.


비단 이런 몇 가지 장점들 뿐이랴. 소심쟁이들에게는 보다 많은

순기능과 가능성이 존재한다. 남에게 패를 제대로 공개한 적이

없기에 어떤 패를 손에 쥐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가진 패를

다 보여주고 앞에서 설치는 적극쟁이들보다 중요한 순간

빛을 발할 한방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러니 더 이상 자신의 소심함에 죄책감을 느끼며 쭈그러들

필요 없다. 적극적인 사람은 적극적인 대로, 소심한 사람은

소심한 대로 다 쓸모가 있게 마련이다. 당신은 본투비 소심쟁이인가

아니면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소심쟁이인가? 아무렴 어떻겠는가.

굳이 억지로 당신의 소심함을 고치려 할 필요 없다. 나란 사람은

그냥 그런 사람일 뿐이니까. 남을 위해 나를 바꿀 필요는 없지 않은가.

변화가 필요하다 해도 그것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나대로, 나답게 살면 된다.


오늘도 소심하게 잘살아 보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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