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써야 할 글감이 떠오르지 않지만 번역 중에도
일주일에 두 번은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터라
브런치를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쓸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일단 쓰기 시작하니 오늘은 내 일과
관련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가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책 번역을 하는 사람을
떠올리는데 사실 번역은 상당히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크게는 출판번역 외에도 기술번역과 게임번역,
영상번역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대부분의 번역가는
한 분야에 종사한다. 이를 테면 책이면 책, 게임이면 게임
한 가지 번역만 한다.
그 중에서도 나는 출판 번역가라 책 번역만 한다.
예전에는 출판 번역이라고 하면 무조건 서점에 나오는
책만 포함했지만 전자책과 웹소설 등이 인기를 끌면서
전자책이나 웹소설만 번역하는 번역가들도 많아졌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웹소설이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면서 번역가들도 덩달아 바빠지게 됐다.
국내 작가의 작품 외에도 중화권 작품도 상당수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몇 년 전 웹소설을
번역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때는 '웹소설을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단가도 낮은 번역을 하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판매 규모도, 장르의 다양성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일종의 대세라고 할까?
하지만 나는 살짝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좀 더 짧은 호흡으로
갈 수 있는 책 번역을 선호하는 편이다. 책 번역은 보통
한 권에 한두 달이면 번역이 끝나지만 웹소설은 한 작품에
3, 4달은 보통이고 여러 명이 분량을 나눠 그 이상 작업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돈도 좋지만 옛날 사람의 체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어쨌든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건
번역가에게도 중요한 일이라 항상 관심을 가지려 노력하긴
한다.
또한 같은 출판 번역가라고 해도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있는
번역가와 직접 출판 기획안을 쓰는 번역가가 따로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에이전시에서 소개한 책들을 번역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본인이 번역하고 싶은 책을 골라 기획안을
쓰고 직접 출판사에 소개한다. 둘 다 프리랜서이지만 후자의
번역가가 좀 더 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내가 바로 후자에
해당하는데 출판사를 통해 의뢰를 받기도 하지만 내가 책을
골라 소개서인 기획안을 쓰는 일이 많다.
이렇게 기획안을 쓰려면 당연히 많은 책 중에서 독자에게
읽힐 만한 책을 골라야 한다. 어떤 번역가들은 온전히 개인의
취향을 반영해 책을 고르지만 나는 많은 독자가 좋아할
책인지 대중성도 상당히 고려한다. 물론 영 내 취향이 아닌
책을 대중성만 보고 번역할 순 없는 노릇이긴 하다.
보통 출판가에서 잘 팔리는 책은 자기계발서나 에세이,
심리학 관련 서적 등이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게 그렇게
대중 취향의 책을 골라 기획안을 공들여 써도 출판사의
선택을 못 받거나 책으로 출간되어도 독자의 외면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면 내가 기획안을 쓰면서도 큰 흥행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 책들이 간혹 뜨기도 한다.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장르나 소재의 책을 출판사에
들이밀면 이미 때는 늦었다고 해야 하나. 일반적으로 책이
나오려면 기획부터 출간까지 5, 6개월은 걸리기 때문에
지금 유행하고 있는 책을 몇 개월이나 있다 내게 되면
유행이 지난 책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가는 앞으로 유행하게 될 장르나 소재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하며 이를 기획안으로 써서 출판사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테면 이 책이 대중적이면서도
유니크한 작품임을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 어떤 책들은 끼워넣기 식으로 힘을 빼고 고른 책들이
의외로 쉽게 출판사의 선택을 받기도 하고, 뜻밖의 사랑을
받기도 한다. 15년 가까이 번역으로 밥을 먹고 있지만
출판사나 독자들의 입맛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간혹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그래도 번역가는 열심히
고를 수밖에.
사실 책 10권의 기획안을 써서 2, 3권만 출판사의 선택을
받아도 적중율이 높은 거라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일단
번역을 시작하면 밤낮 없이 일해야 할 때도 많고, 사람을
만날 일이 확연히 줄어들기도 한다. 이런 고민과 노력에도
생활인으로서의 번역가는 늘 먹고사는 게 빠듯하다. 다른
직장과 병행하는 것이 아니라 전직인 내가 그래도 먹고
살 수 있는 건 결혼을 하지 않아서다. 한 마디로 부양할
다른 가족이 없기에 혼자서 먹고 살 만큼 일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이야기는 앞도 뒤도 없는 그야말로 잡설이 됐지만
번역을 하는 중에도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
우격다짐으로라도 써본다.
다음에는 좀 더 맑은 정신으로 제대로 된 글을 써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