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제

by 달빛그림자

내가 프리랜서인 출판번역가를 하게 된 데에는 할 줄 아는 게

중국어 밖에 없어서였기도 하고, 딱히 할 생각이 없었는데

우연히 하게 된 것이기도 하지만 어디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와 여유가 좋아서이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활동하는

번역가 카페에서 누군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만날 사람이

없고 말할 일이 없어 고민이라고 글을 올린 회원이 있었다.

사람들은 맞는 말이라며 스터디 카페나 커피숍에서 일하라

든지 동아리 활동이나 강의를 들어보라는 등 뜨거운 호응을

보냈지만 워낙 혼자 있길 좋아하는 나는 그닥 공감이 가지

않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아닌데."라고 말하지

않을 눈치가 있으니 그래도 참 다행한 일이다. 어쨌든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소통을 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선 나도 아주

다른 사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사람들은 남의 생활과 나의 생활, 남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비교할 때가 있다. 요즘 나오는 자기계발서에 보면

굳이 남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나는 나답게 살면 된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이는 반만 맞는 이야기일 수 있다.

예전에 번역한 어느 철학책에서 중국의 현대 철학자

저우궈핑은 "질투는 거리에 비례한다."라고 했다. 사람은

가까운 사람을 질투하지 먼 사람을 질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내가 직장인이라면 나보다 진급이 빠른

김과장을 질투하지 뜬금없이 에이브러험 링컨이나 헨리

포드, 워렌 버핏 같은 사람을 질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질투도 일종의 비교인데 질투가 좋지 않은 것은 단순한

비교에만 생각이 멈추는데다 상대를 인정하기보다 흠을

잡고 깎아내리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부정적이고 소모적인 비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 경우에는 주변 사람 혹은 책이나 TV에서 본

누군가와 나를 종종 비교하는데 이것이 좋은 자극제가 된다.

사소한 예로 나는 예전에 굳이 이불을 갤 필요성을 잘

못느꼈는데 국제결혼을 하며 잠깐 함께 살았던 작은 오빠네

부부가 좋은 자극이 됐다. 작은 오빠의 아내는 성격이 깔끔한 사람이라 방 앞을 지나다니다 보면 늘 이불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때 나는 문득 이불만 잘 개어져

있어도 방이 깔끔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생 엄마가

이불을 개라, 개라 잔소리하셔도 큰 필요성을 못느꼈는데

누군가의 깔끔한 방과 내 방을 비교하며 난데없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 뒤로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이불을

개게 됐으며, 다른 방에 있는 이불까지 다 개는 게 아침 생활의 루틴이 됐다.


또한 내게는 친하게 지내는 번역 에이전시 차장님이 있는데

수수료를 떼며 일감을 주는 일반 에이전시와 달리 순수하게

서로 일에 도움이 되는 사이다. 어쨌든 이 차장님은 결혼한

워킹맘인데 아직 아이가 어려 회사에서 조금 일찍 퇴근시켜

주는 배려를 해준다지만 하루를 활용하는 걸 보면 절로

자극을 받게 된다. 회사에서 출판사들의 번역 중개 업무를

하는 것 외에도 친한 번역사들을 챙기고, 퇴근 후에는 아이를

돌보고, 밤에는 출판사들에 소개할 만한 책이나 드라마를

꼬박꼬박 챙겨보며, 책의 소개서도 틈틈이 쓰고, 아이들

동화도 간혹 번역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을 거의 매일 반복하고 있다.


그에 비해 나는 결혼도 하지 않고 애도 없지만 책 번역 하나를 맡게 되면 다른 일은 거의 하지 못한다.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고 번역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래저래

미루는 것이다. 물론 책 한 권 번역하기가 그리 쉽고 여유로운 일은 아니지만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내가 하고 싶은 일 한두 가지는 더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번역이 바빠서, 몸이 피곤해서, 정신이 산만해서 같은

핑계를 대며 번역 스케쥴도 따라잡기에 급급하다.

그럴 때마다 에이전시 차장님을 생각하면 좋은 자극이 된다.

누군가의 장점을 나와 비교해 질투만 하면 거기서 멈추게

되지만 나의 생활에 적용하고 개선하려 하면 정말 큰 도움이

된다. 사실 최근 들어 일요일 아침에 교회를 오가며 스마트폰

으로 딴짓을 하는 대신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게 된 것도

시간을 쪼개 쓰는 에이전시 차장님을 보며 얻은 아이디어다.


나는 여전히 느리고 게으른 사람이지만 주위에 혹은 먼

누구라도 좋은 자극제가 되는 사람이 있으면 보고 배울

작정이다. 내가 몰라서 혹은 둔해서, 귀찮아서 잘 못하는

것이 있을 때 보고 배울 대상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

아닌가.


당신 주변에는 이런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자극제가 있는가.

그렇다면 가끔 자극만 받을 게 아니라 자신에게 맞게 적용해

아름다운 변화를 이룰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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