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큰 조카는 요즘 이틀이 멀다 하고 떡볶이를 먹고
있다. 한창 키가 커야 될 6학년이 떡볶이만 먹는 것 같아
나는 이런 잔소리를 하곤 한다. "야, 너 그러다 죽으면 몸에서
사리처럼 떡볶이가 나오겠다. 적당히 좀 먹어라."
하지만 사실 나는 이런 잔소리를 할 만큼 떳떳한 사람이
아니다. 지금은 살이 많이 쪄서 라면이라도 덜 먹으며
죄책감(?)을 덜어내고 있지만 지난날 나는 아주 찐한 라면
덕후였었기 때문이다. 마치 히어로의 정체나 어두운 과거를
숨긴 채 평범한 척 살고 있는 사람이랄까?
내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꼽는 것은 치킨이지만
그것이 별식이라면 라면은 마치 김치처럼 내 식사에 늘
곁들여지는 존재였다. 아무리 맛난 음식이 있어도 한국인은
습관처럼 매콤하고 시원한 김치를 찾지 않는가. 라면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처음 라면을 먹은 게 초등학교 몇 학년
때부터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라면은 나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는 찰떡 같은 친구였다. 진짜 친구가 곁에 없을 때도
라면은 늘 내 곁을 지켜줬다. 그것도 항상 저렴한 값으로
자신의 몸을 팔팔 끓여가며 말이다.
사실 우리 엄마는 지금 내가 떢볶이를 달고 사는 조카에게
잔소리를 하듯 라면 좀 먹지 말라고 내게 습관처럼
말씀하셨다. 하지만 텔레비전 못보게 하는 집 애들이
어떻게든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찾아 보며 넋을 놓고
좋아하는 것처럼 나 역시 엄마가 건강을 위해 도시락에
싸주시는 연근, 우엉보다 라면을 백만 배 더 좋아했으며
어떻게든 끓여 먹으려고 머리를 굴렸다. 떡볶이는 그나마
초등학생이 매일 같이 먹기에는 양도 많고 비싼 음식이지만
라면은 점심으로 먹어도, 간식으로 먹어도 적당한데다 값도
저렴한 고마운 존재였다.
사실 내가 라면에 깊은 인상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
지하철역 지하에 있는 한 식당에서 친구와 라면을 먹게 된
어느 날부터였다. 그날따라 유심히 주인 아주머니가 라면
끓이는 과정을 관찰했는데 빻은 마늘과 고춧가루가
팔팔 끓는 라면에 들어가는 걸 목격하게 됐다. '아하, 깊은
라면 국물맛의 비법은 저거였구나.' 나는 무릎을 치며
그 뒤로 집에서 라면을 끓일 때면 각종 실험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물론 영업집과 달리 가정집은 불이 세지 않아
후루룩 단숨에 끓여내는 불맛은 만들 수 없지만 집에서
끓이는 라면도 요리처럼 나만의 개성을 얹어 더 맛있게
끓일 수 있으리란 모험정신이 발동했다. 똥손 오브
똥손이라 할 줄 아는 게 많지 않은 나지만 라면이라면
나도 해볼 만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면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조리 시간이 짧고 조리 방법도 간단한
음식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라면의 장인 정도는 아니지만 허투루 끓이지 않고
신경을 쓰다보니 어느새 제법 라면을 잘 끓이게 됐다.
실제로 학창 시절 내가 끓인 라면을 먹어본 친구들은
자기들이 먹어본 라면 중 가장 맛있는 라면이라고
인정해주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내가 끓이는
방법으로 집에서 다시 끓여 봤지만 똑같은 맛이 나지
않더라고 했다. 그만큼 나는 라면을 맛있게 끓여 먹는
일에 만큼은 자부심이 있었다. 라면은 내게 뭔가에
호기심을 느끼고 다양한 시도를 쏟아붓던 열정의 상징과
같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열정이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열심히 각을 맞춰 대파를 썰지 않게 됐으며, 빻은 마늘을
반 스푼 넣을지 한 스푼 넣을지 고민하지 않게 됐으며,
센 불로 끓이다 중불로 줄일지, 일정한 불로 끓일지 생각도
않게 됐다. 라면은 그저 사용 설명서에 나온 대로 끓이는 게
맛있다며 타성에 젖어 대충 3분을 끓여 먹고 치우게 됐다.
나이를 먹으며 라면을 먹는 일은 가슴 뛰는 즐거움이 아닌 대충 때우는 한 끼가 되버렸다. 늘 비슷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며, 적당히 먹고, 대강 먹고 살만큼 일하는 것처럼
모든 일이 무심하게 돌아가는 시곗바늘이 됐다.
나의 호기심은, 나의 열정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런데 요즘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 떡볶이를 먹으려는
조카를 보며 내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던 라면이 떠올랐다.
물론 조카는 떡볶이를 만들 줄 모르지만 때론 자기 용돈으로, 또 때론 친구에게 빌붙어서, 그게 안 되면 아빠 찬스, 고모
조르기를 이용해서라도어떻게든 떡볶이를 먹겠다고
애를 쓴다. 그것이 키 크는 데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다이어트의 적인지 아닌지, 너무 맵던지 아닌지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온전히
즐기는 그 순간의 기분이 그 무엇보다 짜릿한 것 아닐까?
라면을 그렇게 즐겼던 때가 언제였을까? 온전히 나만의
호기심과 열정으로 작은 시도나 변화에도 기뻐하며 즐겼던
때 말이다.
오늘 점심은 나만의 열정을 갈아넣은 라면 한 그릇을 끓여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김을 후후 불며 맛있게 먹고 싶다.
맛있어서 좋아했고, 좋아서 맛있었던 그 라면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