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 밑의 죽음

by 달빛그림자

우리의 삶은 끝없는 얼음 위를 걸어가는 것과 같다.

눈이 막 쌓인 곳에서는 사뿐사뿐 걷기도 하고 얼음이 아주

단단한 곳에서는 발을 구르며 걷기도 하지만 햇볕에 녹아

얼음이 얇아져 물이 흥건해진 곳에서는 질퍽 거리며 걸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살얼음 위에서는

극도로 신경을 집중하며 조심히 건너야 한다. 사실 살얼음

위에서는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언제 균열이 생겨 차디찬

물밑에서 죽음이 떠오를지 모른다.

자칫 발을 헛디뎌 살얼음 밑 죽음에 발목이 잡히면 함께 걷던

누군가가 애타는 구조의 손길을 내밀어도 혹은 혼자 걷다가도 물밑으로 빠져들어갈 수 있다.

그것은 예고되어 있지 않으며 지극히 갑작스럽게 닥쳐온다.


어제 오랜만에 가족 모임을 하려고 이른 저녁에 한 뷔페

식당에서 가족들이 모였다. 그곳은 우리 가족과 작은 오빠네

가족이 사는 곳 중간쯤에 위치한 터라 식사라도 할 때면 가끔

가는 식당이었다. 식사를 3분의 2쯤 마쳤을까? 큰 조카를

데리고 접시에 음식을 담고 있는데 어디선가 "쿵!!"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어쩐 일인지 이상한 기분에 음식이 담긴

그릇조차 그 자리에 두고 반대편 코너를 돌아가 보니 나이

많은 아주머니 한 분이 쓰러져 계셨다. 맙소사, 그야말로

순식간이었으리라.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직원들은 바로

119에 신고를 했다. 아주머니는 의식도 없고,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의사나 간호사 혹은 응급처치를 배운 듯한

세 사람이 나서서 심장에 압박을 가했다. 어째서 인공호흡은

시도하지 않을까 해서 보니 이미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생면부지의 남이지만 한 공간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걱정이 되어 자리를 쉬이 떠날 수 없었다.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는데도 구조대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세 사람이 번갈아

몇 번이나 심장 압박을 하고, 다른 직원들이 신발을 벗기고 옷을 헐겁게 하며 온몸을 주물렀지만 상황은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20분쯤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119

구조대원들이 나타났다. 그 자리에서 다시 응급조치를 하고

아주머니는 들것에 실려 식당을 떠났다.그렇게 보고 싶어서

였을까? 아주머니는 손을 조금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다.


내 가족도 아니건만 뜻밖의 상황에 가게 안 사람들 모두

정신이 없을 때 직원이 다가와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하게 해

죄송하다며 식사비를 전액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토요일

저녁이라 가게 안을 꽉 채우고 있던 사람들은 황망히 자리에서 일어나 환불을 받고 가게를 나섰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제대로 대화도 못나눴던 가족들은 근처 커피숍에

들러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 헤어졌다. 가족들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사고를 목격한 내게 어찌된 일인지 물었고,

아주머니가 의식을 회복했을지를 걱정했다. 하지만

20여 분이나 계속된 심장 압박에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던

상태라 서로 확정적으로 말하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힘들

것이란 예감을 했다. 사실 사람이 쓰러졌을 때 바로 발견을

하고, 응급조치를 받을 수 있는 건 아주 운이 좋은 상황인데

그럼에도 목숨이 죽고사는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인가

보다.


언젠가 엄마가 나중에 자기가 아파 오래 병상에 눕게 되어

정신이 없으면 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하지 말고 편히 보내

달라고 하신 적이 있다. 나이가 칠순이 넘고 여기저기 몸이

고장나기 시작하니 그런 생각을 해보시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어제 낯모르는 아주머니가 당한 뜻밖의

상황을 보며 엄마의 그 말이 겹쳐 보였다.

하지만 나이가 많다고 혹은 적다고 누가 죽음 앞에서 나는

아니라며 손을 내저을 수 있을까?어떤 사람은 이제 막 눈이

내린 뽀득뽀득한 얼음 위에, 어떤 사람은 아무리 발을 굴러도

깨지지 않는 단단한 얼음 위에 서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 모두

언젠가 갑작스러운 살얼음판을 마주하게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니까.


오늘은 어쩐지 "그러니까 하루하루를 소중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인생은 그런 거다.'란 흔한 말을 곱씹게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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