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특히 천둥, 번개를 동반한 태풍 또는 폭우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물론 실외가 아닌 실내에서 보고 듣는 경우에 한 해 서기는 하지만 말이다.
번쩍, 우르르 쾅쾅, 그리고 쏟아지는 빗소리. 묘하게도 이런 요란한 소리가 나에겐 안정감을 주곤 한다.
농사일을 하시는 부모님은 늘 새벽 일찍 일을 나가셨고, 해가 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하셨다. 그렇게 많은 날을 나는 동생과 함께 텅 빈 집을 지키곤 했다. 외로움이나 쓸쓸함이라는 표현을 몰랐던 그 어린 나이에도 이상하게 마음 한 편 이유모를 감정들이 늘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비 오는 날은 달랐다. 비가 오면 밖에서 일을 할 수 없는 엄마, 아빠와 집에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작은 방에 함께 모여 소소한 군것질을 하며 티격태격 살 부대끼는 하루가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다.
그렇다 보니 언제나 요란스러운 비는 그저 나에게 따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포근함 같은 순간이다.
이젠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그때 느꼈던 그 행복감과 안정감은 여전히 내 안에 있는가 보다. 세상이 뒤집힐 듯 요란스러운 폭우가 쏟아지는 이 밤도 편히 잠들 수 있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