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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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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나흘째다.

".. 오늘도 라이터스(Writer's) 도서관을 찾아주신 주민분들과 여행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첫 장에서 글의 첫머리만 생각하다 하루를 끝내고 싶지 않다고 했던 거 기억하는가? 조에게 있어, 이는 최악의 하루를 보내는 방법이라고 했던 것 말이다. 글쎄, 왠지 이 '최악의 하루를 보내는 방법'이 곧 바뀔 것 같다. 조는 지금 차라리 책상 앞에 앉아서 소설의 실마리라도 붙잡으려 앉아 있었던 그때가 나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닿을 듯, 말듯한 소설의 첫 글자에 손을 뻗어보려고 했던 그때가.


"이 책도 아니고 .. 이 책도 아니고.."


조는 나흘째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는 중이다. 도서관의 직원인 샐리 악의 눈총을 받는 것도 이젠 개의치 않는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더는 헛되이 시간을 버려선 안된다. 퍼즐 한 조각이라도 찾아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어서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


"대체 어딨는 거야. 아빤 대체 어디에다 숨긴 거야"


가브리엘과 그렇게 헤어진 날, 조는 그의 말대로 호텔에 돌아가 아빠와의 추억들을 장난감들처럼 그녀의 노트 위에 전부 쏟아냈다.

그리고 하나하나 손으로 추려내며 그럴듯한 것들을 전부 골라냈다.


'보물 찾기..'


조가 기억하는 그녀의 아빠, 윌리엄 라이터는 조가 어렸을 때부터

보물 찾기 게임을 하며 자주 놀아줬다. 모험심 가득한 그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게임이었다.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소설에서 인생을 비스킷에 비유했다면, 모험가인 윌리엄 라이터는 인생은 보물 찾기에 비유한 것이다. 아빠는 각자의 인생의 바닥에는 많은 상자가 깔려져 있지만, 그 상자는 저절로 열리지 않기에 그 상자를 열어보고 싶다면 힘들게 상자가 있는 곳까지 일단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밧줄에 매달리던, 도구를 써서 건져올리던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서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상자를 손에 넣어 뚜껑을 열었을 때, 정말로 보물이 나온다면 고생한 자신에 주는 보상이라 생각하고 마음껏 기뻐하면 되고, 만일 보물이 아니라 흙, 자갈, 못, 염소똥, 생선가시 심지어 아무것도 안 든 그냥 빈 상자라고 하더라도 다음번에 보물이 나올 확률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이니 꽝이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미련 없이 빈 상자는 팽개치고 다음 상자를 찾아 걸어가면 된다고 하였다. 게다가, 꽝인 상자를 열려고 노력한 덕분에 다음 보물상자를 손에 넣을 방법도 하나라도 더 터득하게 되었을 테니 어떤 상자가 걸리던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멀리해야 할 것은 꽝인 상자가 아니라 꽝이 걸렸다고 실망하고 주저하느라 앞으로 나아갈 것을 잊어버린 자신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것이 윌리엄 라이터의 철학이었다.

윌리엄 라이터는 이 철학을 자신의 딸에게 보물 찾기 게임을 통해서 알려준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또 하나의 보물 찾기 게임을 다 큰 딸과 하는 중이다.


'<향수>도.. 아니고, <인간실격>도.. 아니고, <삼국지>..... 다 아니고'


호텔방에 와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전부 쏟아내었을 때,

<마스터피스>를 쓰려던 아빠가 남긴 와인색 노트에 아빠와의 추억을 전부 털어냈을 때, 조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머릿속에서 추억의

서랍장을 여는 것이 내키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아빠는 그녀에게

인생은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가르쳐주지 않았던가. 그것도 보물 찾기로 말이다. 아빠는 자신의 발이 디딘 땅이 어떻든

다음으로 넘어가는 법을 알려주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별달리 없다는 생각이 들면, 그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최대한 파악한 후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야 한다. 그래야 그중에서 어렴풋이 반짝이는 것 하나쯤은 볼 수 있게 될 테니. 조는 보물찾기 게임을 위한 보물찾기 게임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번엔 그녀와 같이 할 사람이 없을 뿐. 엄마도, 피에르도 그리고 보물을 숨긴 정작 판을 벌인 장본인도 없이 말이다.


조는 순간, 가브리엘을 떠올렸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 그도 그의 일이 있는 사람이다. 그도 사생활이란 게 있는 사람이고, 그도 그의 할 일이 있다. 그녀에게 이곳에 온 이유를 털어놓지 않았던가. 그도 그녀처럼 가족을 떠나와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하고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어딘가에서 열심히 논문을 쓰고 자료를 찾고 밤샘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자신은 나흘 동안 도서관에서 불특정 다수의 책들을 마구잡이로 뒤적이며 보물 찾기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나 홀로 게임을 말이다.


'하....... '


조는 장갑을 벗고서 주저앉아 얼굴을 감쌌다.


'이젠 못 해먹겠어!!!'


당연히 이곳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당연히 첫 번째 단서는 이곳에 있어야 했다. 도서관이 아니라면, 대체 그만한 장소가 어딨단 말인가?

아니라면 내가 생각이 짧은 건가? 상상력이 그렇게나 없는 걸까?

조는 고개를 들고 책꽂이에 삐뚤게 꽂힌 책들을 보며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아빠는 그녀가 글을 쓸 때 가장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사실, 조가 작가가 된 이유는 다 그녀의 아빠, 윌리엄 때문이다.

책을 출판하고 작가가 되어 이름을 세상에 알린다면 아빠가 돌아와

그녀를 인정해주고 함께 기뻐해 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랬듯, 기념일 날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피자집에 가서 엄마와 함께 셋이

단란하게 모여 가족다운 식사를 할 날이 다시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었고 그녀는 이제 어엿한 숙녀라 불릴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아빠는 오지 않았다.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그녀는 결국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스크리브 로러스에 첫 칼럼을 실었을 때도, 처음 책을 출간하고 두 번째 책을 출간하였을 때도 아빠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분명, 가브리엘은 아빠가 내 책을 읽었다고 했다. 내 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가? 물론, 썩 훌륭한 책은 아니었다. 그녀 자신도 '매우 만족'은 줄 수 없는 책이었다. 하지만, 그의 하나뿐인 딸이 어쨌든 힘들게 책을 써서 처음 출간했는데 어떻게 아무런 말 한마디를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올해의 Sisu>에 계속 도전하는 것도 아빠 때문이다. 아빠가 우승하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매해 도전했던 것이다.


'다 부질없어, 정말 다 부질없어'


조는 일어나 엉덩이를 털고 한쪽에 샐리 아가 진열하려고 쌓아둔

책들을 발로 차버리고 바깥으로 향했다.


"이봐, 이봐 아가씨! 공공 도서관의 책들을 발로 차면 어떡해?

당신 정신 나갔어?"


'그런가 보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을 보면 그럴 만도 하지.'


조는 다신 오지 말라며, 뒤에서 소리 지르는 샐리아를 향해

알았다는 손짓을 하고 휴게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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