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땅이 바다와 맞닿아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끝도 없이 흘러가는 바다의 수평선을 보고 있노라면 머릿속을 헤매고 있던 생각도 따라서 어느샌가 저 멀리 흘러간다. 복잡한 생각은 바다에 맡기고 당신은 떠나라는 듯이 저만치 가도록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늘 자연에서 길을 찾는 것이 아닐까. 인간과 경계선을 놓고 맞닿아 있는 바다는, 다른 자연들처럼 인간에게 한 번 더 생각할 기회를 준다. 땅에서 땅으로 가기 전에, 바다에서 한번 털고 가라는 듯이 바다는 철썩이며 얼굴을 보인다. 조는 그런 바다를 보며 안에서 폭발하는 감정을 바다에 털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대신 가는 동안 바닷바람을 맞으며 잠시 잊어버리기로 했다.
조는 배 위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엄마와 아빠의 이름을 딴 기념관을 바라보았다. 점점 작아져 더 멀어진다면 한 점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언젠가 자신의 마음을 휘몰아치게 했던 것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점처럼 보이게 된다. 조는 이게 아빠와 우리 사이의 문제라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했다. 지난 세월에 대한 원망과 뭉클함과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얼룩진 감정들이 나중에 보면 별거 아니게 되는 날이 외길이라며 빌었다.
조는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기로 했다. 돌이켜 보면, 자신의 <마스터피스>를 찾겠다고 시작한 여정이었다.
슬럼프에 빠져 있던 나는 돌파구를 찾았고, 그때 캡틴 로버트가 아버지가 맡겨두었던 클루브린행 티켓을 내밀었다. 십 년 전 사라진 아버지가 맡겨두었던 것을 캡틴은 이제서야 내밀었다. 나는 그 티켓을 쓰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클루브린에 가기로 마음먹었고 홀로 이곳에 왔다.
그리고 지금은 이곳에 있을지 모를 아빠를 만나고자 워드월드의 미신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이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고, 이젠 마지막 관문에 다다랐다. 조는 목적지에 닿기 전 패스를 꺼내 보았다. 기념관의 두 책의 아래에 숨겨져 있던 3, 4번째 퍼즐까지 자기 자리를 잡고 이제 5번째 다이아몬드 모양의 퍼즐만 남았다. 조는 5번째 퍼즐의 단서를 어디에서 찾을지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기념관에서 보이는 공원의 모습이 그녀에게 먼저 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공원은 아버지에 그려줬던 모습 그대로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푸른 나무와 연두색 들판, 그 위에 노오란 별 대신 노오란 꽃들이 공원을 수놓았다.
'자, '조의 공원'에 다 왔습니다. 내리세요!'
사람들은 저마다 들뜬 얼굴을 하고 배에서 내렸다. 하지만, 조는 그러지 못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공원에 발을 디딘 지금, 조는 온몸이 경직된 기분이 들었다. 추운 뱃바람 때문도 아니고, 연두색 들판을 수놓은 노오란 꽃 때문도 아니고, 길쭉하게 뻗은 나무도 때문도 아니다.
이곳은 완벽했다. 조의 바람대로 완벽했다. 어릴 적, 자신이 아빠에 그려줬던 그대로. 아빠와 가고 싶었던 곳 그대로 아빠는 실현해두었다.
그러나, 조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이상한 기분이었다. 4번째 퍼즐까지 맞추고 끝을 향해 왔다. 이제 정말 마지막만 남았다.
우려했던 것들은 생각보다 잘 풀렸다. 퍼즐 하나도 못 맞출 것 같았던 패스는 어느새 마지막 칸만 남겨두고 있었다.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조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이해한 것은 없었다고 한 게 맞을 것이다. 어쩌면 전부 꿈이라고 여기는 편이 내 안에선 더 이해가 빠를 것이다.
조는 고개를 들어 커다란 나무를 보았다. 조는 예전부터 큰 나무를 좋아했다. 뭔가 그 안에 있으면 나무가 자신을 지켜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 위에도 노오란 꽃이 폈다. 들판에도 어여쁜 꽃이 폈고 머리는 바닷바람이 간지럽힌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진을 찍으며 이곳에 온 것을 기념한다. 그러나, 조는 어쩐지 기쁘지가 않았다. 그리고 조는 한곳을 바라보고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빠와 내가 나란히 앉아 책을 읽어야 하는 곳,
이곳에 나는 있다. 하지만 아빠는 이곳에 없다. 아빠가 이곳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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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는 들판에 올라 그림 속 그 장소에 앉아 앞을 바라보았다. 기념관도 이젠 정말 점 같이 보인다. '글의 마을'이, 아니, '클루브린' 이 바다와 함께
저 멀리 떠내려간 것 같다. 뭐든지 작게만 보인다면, 정말 점같이 보인다면 모든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봤던
사람들과 차들과 집들은 얼마나 작게 보였는가. 나는 얼마나 이 클루브린에 오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걱정과 두려움을 앞세워 이곳에 오는 걸
더디게 만들었는가. 조는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지난날의 자신이 정말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런 날들을 뒤로하고 결국엔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만든 꿈의 장소에 앉아있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아버지는 늘 용기가 한 발자국 부족했던 자신을 걱정했었다.
조는 늘 아버지의 인정이 받고 싶었다. 당신처럼 용기를 내서 세상에 나가볼 생각을 안 하고 그저 안전한 마을 안에서 빙글빙글 도는 자신이
더는 성장 못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늘 자신처럼 밖으로 나가 세상을 보고 식견을 넓혀야 더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고 했고,
나는 그런 강요를 하는 아버지가 싫었었지만 한편으론 아버지의 인정에 목말라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왜 자신은 늘 원하는 것에 닿지 못하고 늘 모자란지가 궁금했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알 것 같다.
이 자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지금이라면 알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그 틀을 깨보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이를 넘어서보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을 막아서는 틀에 금이 갈 정도로 몸을 부딪히는 것보다 그 틀에 부딪히지 않으며 사는 것에 더 신경을 썼었다. 아버지는 내가 그 틀을 부숴보길 바랐던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다른 aika 마을 사람들처럼 aika 마을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평생을 이 안에서 보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바깥세상을 보고 온 캡틴 로버트도 마을 사람들에게 이를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알을 부리로 깨고 나온 새가 강하게 살아남듯,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면 스스로 몸을 부딪혀 깨는 그 정신을 가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조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보물을 찾고 또 다음의 더 큰 보물을 찾으러 가는 그 여정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조 라이터!" 조는 자신이 부르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에 가브리엘이 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
"가브리엘!" 조는 일어서서 가브리엘을 반겼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조?"
"네, 잘 지냈어요. 가브리엘, 놀랄 만한 게 있어요! 저 벌써 퍼즐 4개나 맞췄어요!" 조는 자랑스레 패스를 가브리엘에 보였다.
"조, 정말 대단하네요. 결국 해냈네요. 이제 마지막 조각만 찾으면 되네요."
"네, 맞아요."
"마지막 조각이 어딨는지 아는 거예요?"
"네, 알아요." 조는 자신의 발밑을 가리켰다.
"이곳에 있어요, 가브리엘."
"어떻게 알았어요, 조?"
"이곳은.... 말 안 해도 알 수 있는 곳이에요. 아버지와 저는 말 안 해도 알 수 있는.. 그런 곳이에요."
조는 또 눈물이 흐르기 전에 땅을 파내기로 했다. 이제 마지막 조각이 말 그대로 그녀의 발밑에 있다.
"이제 마지막 조각을 파볼까요?" 조는 들고 있던 패스를 가브리엘의 손에 올려두고 두 손으로 땅을 파냈다. 이곳에 퍼즐을 묻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이곳에 퍼즐을 묻고서 자신처럼 앉아 저 바다 끝을, 기념관을, 클루 브린을 지켜봤을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당신의 마음을
두고 온 가족을 떠올리며 조금은 눈물을 흘렸을 아버지를 떠올리며 조는 땅을 팠다.
".. 봐요, 가브리엘." 조는 일어서서 마지막 조각을 가브리엘에 보였다. 지금 자신들이 서 있는 곳에 앉아있는 조와 아버지가 그려져 있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다.
"... 정말 당신은 알고 있었군요. 당신은 알고 있었어요, 조."
"그럼요, 제 아버지인걸요." 조는 패스를 집어 들어 마지막 조각을 맞춰보려 했다.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배를 타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조각을 맞추면 어떻게 될까요? 혹시 어떻게 되는지 아나요? 이제 워드 월드에 가게 되는 건가요?" 조는 약간 긴장한 얼굴로 가브리엘을 쳐다보았다. 가브리엘도 약간 긴장한 듯 보였다.
"아니요, 저도 알지 못해요. 다 어쨌든 제가 들은 건 소문이었고, 실제로 보진 못했으니까요."
조는 심호흡을 한번 크게 쉬고 마지막 조각을 끼워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