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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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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으" 조는 지끈지끈한 머리를 만지며 일어났다.

대체 이곳이 어디지? 왜 이렇게 세상이 하얗지? 워드월드는 위험하다더니.. 내가 벌써 죽은 건가?


"조, 괜찮아요?" 아, 일단 가브리엘이 있다. 혼자 죽은 건 아니구나.

"가브리엘.. 우리.. 우리 죽은 거예요?" 조는 가브리엘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워드 월드는 위험하다더니, 그게 다 죽으니까 그래서였어. 그러니까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게 당연하지. 간 사람들은 전부 죽었으니까 본 사람들이 없는 게 당연하지.


"죽다니요, 조. 당신은 죽지 않았어요."

"그럼, 여긴 어디에요? 왜 이렇게 세상이 하얘요?"

"이게 바로 당신의 세상이에요, 조."

"제 세상이오?"

"그래요, 이게 당신의 세상이에요. WORDWORLD는 즉, 자신의 세상을 말해요. 말을 뜻하는 'WORD' + 세상을 뜻하는 'WORLD'. 글로 만들어진 세상이죠. 사람은 누구나 지상에서 각자 자신의 세상을 써 가요. 여긴 그런 작가들을 위한 세상이에요."

"그럼 당신은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나요?"

"네, 알고 있었어요." 가브리엘은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신 혹시.. 천사인가요?"

"네, 맞아요. "역시.. 이름이 가브리엘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그런데, 당신은 왜 그 펄럭 펄럭이는 하얀 날개나 머리 위에 링 같은 걸 안 하고 다니죠?"

"인간과 대화할 땐 하지 않아요. 그러면 바로 천사인 거 티 나잖아요."

그럼 이름부터 바꾸지

"그럼.. 당신은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다면, 제가 결국 이곳에 오게 되기란 걸 알고 있었단 소린가요?"

"네, 맞아요. 전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워드월드를 알 수 있어요.

즉,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삶을 써 내려가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는 뜻이에요. 우린 그걸 겉보기에 그 사람에게서 보인 색으로 알 수 있는데 당신은 하얬어요. 아직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죠. 그래서 당신에게 말을 걸었고, 당신은 뭔가를 쓰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했죠. 전 당신을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 천사는 이런 식으로 작업을 거는구나.

"도와주기도 하고, 안 도와주기도 하나요?"

"당신처럼 도와주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이들은 도와주는 편이에요. 하지만, 당신처럼 이렇게 끝까지 가보려 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요."

"그럼.. 이 퍼즐도 당신이 넣은 건가요?"

"네, 맞아요. "

"어떻게요?"

"전 천사잖아요. 마법을 쓸 수가 있죠."

"그럼 그때 마법으로 넣었던 건가요?" 가브리엘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는 천사에 놀아난 기분에 머리가 어질해진 기분이 들었다.

"일단 속였던 건 미안해요. 하지만, 나로선 그래야 했어요. 왜냐면, 당신을 도와주려면 그래야 했으니까요. 난 당신이 끝까지 갈 거란 걸 알았거든요. 당신처럼 위험한 길을 무릅쓰고 간다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으니까요. "

"이곳이... 그러니까 천국인 거죠?"

"엄밀히 말하면 천국 내에서 WORDWORLD인 거죠. 회사에도 막 여러 부서가 있잖아요. 천국이란 회사에 WORDWORLD 부서라고 생각하세요. " 죽어서까지 회사에 다니고 싶지 않은데

"그러니까.. 당신은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요?"

"네, 맞아요. 그리고 난 당신이 정말로 당신 자신을 이겨내길 바랐어요.

솔직히 하얀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자신을 써 내려갈지 모르기에 우리가 아무리 천사라고 해도 그 사람의 미래까진 알 수가 없어요. 당신이 해낼 거라는 걸 알았다고 하지만 어쨌거나 그건 제 추측이지. 확실한 미래는 아니거든요.

즉, 당신이 오늘 하얀색이었다고 해도 내일은 까맣거나 회색으로 바뀔 수도 있고 빨간색으로 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요?"

"빨간색은 삶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들을 말해요. 즉, 위험 수준 이거죠.

인간세계의 빨간 신호등처럼요. 그리고 까만색은... 이젠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이죠."

"... 죽은 건가요?"

"네, 즉, 정신적인 죽음을 말해요. 알코올중독처럼 자신을 학대하는 방식으로

정신이 돌아오기 힘든 사람들요. 더는 자신의 이야기를 써나가기는커녕 퇴보하는 식으로 자신을 지워나가는 사람들이 있죠."

"그런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나요?"

"살리려고 하죠. 하지만, 그들은 거의 우리를 못 봐요.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릴 봐도 알아보지 못해요. 하지만, 당신은 날 알아봤죠."

"아뇨, 못 알아봤어요."

"당신은 날 알아봤어요. 날 지나치지 않았잖아요."

조는 주위를 돌아보며 지금 자신의 상황을 해석해보려 했다.

자신은 죽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은 지금 천국에 와 있다.

그리고 천사와 여태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 중이다. 왠지 더 이해하려 들었다간 빨간불이나 까만 불이 들어올 것 같아 중단하기로 했다. 이는 자신의 이해 범위가 아닌 인간세계의 범위를 넘어선 일이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이곳이 위험하다고 했을까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들이 모르는 것을 위험하다고 하니까요.

무지한 것에 대해선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죠.

그래서 일단 위험하다는 식으로 자신의 앞에서 치워버리죠.

그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삶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았어요.

오히려, 모르니까 더 맞서 싸우자는 식이었죠. 당신의 아버지처럼요."

"우리 아버지를... 아세요? 혹시 이곳에 계시나요?"

혹시........ 돌아가신 걸까?

"당신의 아버지에 대해서 지금은 저도 말해줄 수 없어요.

하지만, 이것만은 말해줄 수 있어요. 당신의 아버지는 잘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을 정말 많이 사랑해요." 조는 가브리엘의 말에 눈물을 글썽였다. 조는 눈물을 훔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국이라 그런지 아니면 난방이 잘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아빠를 보고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조는 지금은 이걸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정말 아빠와 나의 길이 서로 닿는다면 만나게 될 거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조, 그때 내가 당신은 이미 마스터피스를 쓰고 있다고 한 말 기억해요?"

"네, 기억해요"

"이제 그 말의 뜻을 알 것 같나요?" 가브리엘은 바닥에 떨어뜨린 패스를 다시 조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미 모든 피스들은 다 당신의 손안에 있어요. 다만, 그 조각들이 다 당신의 삶에 조각조각 나 흩어져 있어서 아직 잘 모르는 것뿐이에요. 당신은 앞으로

살면서 그 조각들을 하나하나 잘 주워가면 돼요. 마치 보물 찾기처럼요."

"보물 찾기요?" 가브리엘은 씩 웃으며 조의 왼쪽의 손목을 쥐고 잠시 눈을 감았다. 가브리엘의 문신과 같은 것이 자신의 손목에도 새겨져 있었다.

"이 문신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워드 월드의 문을 연 기념이에요. 이것만 있으면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우린 이제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요. 자, 당신은 이제 가야 해요.

해야 할 일이 있잖아요."

"정말 다시 만날 수 있는 건가요?" 가브리엘은 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조, 잘 가요. 가서 당신이 이곳에서 찾은 것들을 쓰세요.

이제 마스터피스가 어딨는지 잘 알잖아요?" 조는 가브리엘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그렇다. 아직 그녀에겐 할 일이 남아있다. 이제 aika 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자신을 몹시도 기다리고 있을 엄마와 피에르를 향해.


가브리엘이 조를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문인가.

이 문만 지나면 난 다시 지상세계로 가는구나


"아, 가브리엘."

"왜요, 조?"

"아빠를 만나면... 전해주세요. 난 이제 아빠를 용서했다고. 그리고 많이 보고 싶다고요. 언젠가 우리의 길이 꼭 서로에게 닿길 기다리겠다고요."

"꼭 그럴게요, 조." 가브리엘은 조가 문을 넘어가는 뒷모습을 배웅했다.

이제 조는 예전처럼 용기 없는 겁쟁이의 애가 아니라, 자신 있게 발걸음을

내딛는 여자가 되었다. 이제 그녀는 그녀의 마스터피스를 써 내려갈 것이다.

가브리엘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니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많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그녀는 그녀의 앞가림을 잘 해나갈 만큼

성장했기 때문에. 이제 그녀 자체가 마스터피스이기 때문이다.



가브리엘은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나지막이 되뇌었다.





잘 가렴,

나의 마스터피스,

나의 딸, 조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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