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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로버트!!" 집 앞에 눈길을 치우는 로버트를 부르는 소리가 aika 마을을 울린다. 로버트는 잠시 허리를 들고 자신이 잘못 들었나 착각했지만, 이는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뒤돌아 본 그의 눈앞에 황소처럼 달려오는 조 라이터가
보였기 때문이다.
"캡틴 로버트, 잠깐만 기다려요!!!"
"미스 조 라이터!! 마침내 돌아왔구나" 캡틴은 조 라이터를 꼬옥 안아주었다.
"캡틴, 제가 아직 늦지 않았죠?"
캡틴은 조가 꼭 쥐고 있는 봉투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열심히 뛰어온 이유는 바로 저 봉투 안에 담겨 있으리라. 저 안엔 이번에 어떤 게 담겨 있을까? 왠지 작년의 앨런 딜런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캡틴은 봉투를 건네받으며, 조 라이터의 볼을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
"도전하는데 늦는 일이란 절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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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들뜬 aika 마을은 집집마다 트리를 장식하며 따뜻한 식사를 준비하는 데 한창이다.
"엄마, 닭고기 아직 다 안 구워졌을까?" 메리는 수프에 넣을 야채를 써느라 여념이 없다.
"글쎄, 한번 좀 봐볼래, 조?" 그리고 조는 트리를 장식하는 데 온정신을 쏟아붓고 있다.
"내가 볼게, 조" 피에르가 오븐으로 달려가 닭고기를 콕콕 찔러본다. 닭고기의 훈제 냄새가 조의 집안을 단숨에 휘감는다.
"아, 그나저나 오늘이 바로 그날이네." 메리가 야채를 정리하며 말한다.
조는 애써 태연한 척을 하고 싶지만 장식하는데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다. 매해 <올해의 Sisu>에 도전했지만 올해는 더욱 떨리는 것을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이면, 광장에 크리스마스 전야를 맞아 <올해의 Sisu 주제>를 발표했을 때처럼 모두 다 모일 것이다. 그리고 <올해의 Sisu>의 우승자가 발표될 것이다. 갑자기 조는 지난날 자신이 한 말을 조금 주워 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도전에 더 큰 의미를 둔다고 했었는데, 마스터피스에 도전만 할 수 있어도 좋겠다고 했었는데, 마음은 우승 트로피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는 심장에게 진정하라며 쓰다듬고 장식을 마저 하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도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게 자연스러운 사람의 마음 아닌가? 과연... 올해의 우승은 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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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은 연말에 들뜬 분위기로 더욱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어두워진 마을은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의 네온사인으로 크리스마스가 왔음을 알리며 aika 마을을 형형색색으로 수놓았다. 조는 바로 이곳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클루 브린에서 몹시 그리워하던 광경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 광경을 다시 볼 수 있게 무사히 돌아온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와아아아아 아나" 오늘은 캡틴은 마을 사람들의 산타가 되었다.
"캡틴 산타아아아아아아!!!!" 하얀 수염까지 붙인 캡틴은 선물 꾸러미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선물을 던져주었다. 정말 캡틴은 스위트한 분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aika!"
"메리 크리스마스, 캡틴 산타!"
"오늘은 바로 크리스마스이브죠? 모두들 집에서 크리스마스 준비가 한창일 것 같네요. 다들 크리스마스 준비로 바쁘겠지만 그래도 우리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죠? 바로 <올해의 Sisu 발표>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산타의 말에 일제히 환호했다. 조도 엄마와 피에르의 손을 잡고 들어 올렸다.
"올해도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날이 갈수록 여러분의 아이디어가
샘솟는지 참으로 다양한 응모작들이 있었는데요. 그래도 <올해의 Sisu>의
주인공은 단 한 분에게만 드릴 수가 있습니다."조는 숨을 죽이고 캡틴 산타의 말을 경청하려 했지만 심장이 너무 크게 뛰는 탓에 제대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올해의 Sisu>영예가 누구에게 돌아가든 여러분은, <올해의 Sisu>에 도전을 한 분이던, 그렇지 않던 여러분은 여러분의 겨울을, 이 aika 마을의 겨울을
각자의 방법으로 잘 이겨내실 거라 믿습니다. 이 겨울은 반드시 지나갑니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면 봄날이 올 거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지나갈 겨울에 굴복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그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여러분 자신에 보여주세요." 캡틴 산타의 연설이 끝나자 모두 그를 향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조도 이번만큼은 진심으로 공감하며 손뼉을 칠 수 있었다.
그녀 자신이 이미 그녀에게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올해의 Sisu>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올해의 Sisu, 올해의 마스터피스....."
조는 심장을 문지르며 심장을 다독였다. 심장이 터질 것 같기 때문이다.
"조 라이터!!!!!!!!" 펑!
팡파르가 aika 마을을 울리고, 엄마와 피에르는 조를 끌어안아 세 사람은 빙글빙글 돌았다. 모두들 조를 향해 일제히 박수를 보내며, 조는 무대 위를 향했다. 조는 정말 자신의 심장이 터지지 않았는지 확인을 해본다. 아직 심장은 제대로
뛰고 있다. 이게 다 천국에 다녀온 후유증이다.
"축하한다, 조!" 캡틴 산타는 <올해의 Sisu> 우승 트로피를 조에게 건넸다.
이번 트로피에는 우승자 이름으로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다.
"감사해요, 캡틴" 캡틴은 그녀와 악수를 나눈 후, 그녀가 우승 소감을 말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올해는 TV에서 보는 연말 시상식의 주인공들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올해 연말은 그녀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조는 침을 두어 번 삼키고 마이크 앞에 섰다. 저 멀리 네온사인이 그녀의 우승을 축하하며 반짝였고, 마을 사람들의 눈 또한 반짝였다. 밤하늘의 별도 반짝였고, 그녀의 두 눈도 반짝였다. 엄마와 피에르는 그녀에게 어서 말하라는 듯한 손짓을 했다.
조는 그대서야 자신이 수상소감을 미처 준비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괜찮다. 그저 마음에 있는 말을 하면 된다. 준비한 수상소감은 식상하니까. 그리고 이젠 그녀의 마음에 있는 말을 얼마든지 말할 수 있게 됐다.
"11월 1일, 이 자리에서 처음 올해의 주제는 <마스터피스>라는 걸
봤을 때, 전 낙담했습니다. 제겐 너무 주제가 난해했고, 며칠을 있어도
도무지 써지지가 않았어요. 써지지 않는 글은 쓸 수가 없지요.
그래서 전 올해에 도전은 못할 거라 생각했어요. 매해 도전했던 제가
이렇게 여기서 무릎을 꿇게 되는구나라고 느꼈죠. 때마침 그때는
매거진을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하던 제가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라
더욱 힘들었었거든요..." 조는 마침 다이앤이 생각나던 차에, 다이앤이
그녀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것을 본다. 조는 그녀를 향해
옅은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그때는 제 앞에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전 그 도전에 응했습니다. 도전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었지만
저는 도전을 하는 쪽을 택했어요. 삶에서 두려운 건 늘 안전하게
있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거란 걸 알았기 때문이죠.
전 그렇게 도전했고, 믿을 수 없는 것들을 한 달 동안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전 한 달 동안 많이 성장할 수 있었어요.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작가는 자신의 집을 헐어 글을 쓴다고 하였죠. 전 이 경험을 녹여
글을 썼고 이는 <마스터피스>가 되어 제 손에 우승 트로피를 쥐여줬습니다.
정말 그동안 우승하고 싶었어요. 정말 탐이 났었거든요. 이젠 트로피를
거머쥐었으니 전 이제 다음을 향해 갈 거예요. 저희 아버지는 인생은 늘
보물 찾기와 같다고 했죠. 전 어딘가에 숨어있을 보물을 향해 또 찾으러
나갈 거예요. 전 앞으로도 제 삶 전체에 흩어져 있는 조각들을 주우러 계속 나아갈거에요. 그리고 그 조각들은 제 안에서 자리를 찾아 맞춰지겠죠.
마치 퍼즐처럼요. 여러분, 기억하세요. 여러분도 또 저도 이런 삶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마스터피스라는 것을요. 여러분 자체가 바로 마스터피스랍니다. 캡틴?" 조는 고개를 돌려 캡틴을 불렀다.
"예스, 조 라이터?"
"저에게 양치기나 양치기의 아버지 중 어느 쪽이 될 건지
물었던 거 기억하시나요?"
"예스, 조 라이터." 조는 그에게 웃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전 마침내 양치기가 되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전 끝내주는 양치기가 될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