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버나움>
대개 두 번 보는 영화는 드문 편이다. 마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처럼, 아무리 괜찮은 영화라도 한 번 봐서 다 아는 씬들을 두 번째로 보면 흥미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처음 봤을 때의 충만한 느낌과 감동을 퇴색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래서 왠만한 영화가 아니면 좋았던 기억을 그대로 두듯, 영화의 엔딩도 그렇게 덮어두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 모처럼 왠만한 영화가 아닌 영화를 만났다. '현실 같은 영화'가 아니라 진짜 난민의 현실을 다룬 영화이기에 마냥 좋았다고만 할 수 없는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난 이 영화를 만나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현재, 많은 영화팬들의 사랑으로 국내에서 십 만 관객과 만나며 롱런하고 있는 영화인 레바논의 난민의 삶을 한 소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 <가버나움> 이다.
4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만들었다는 나딘 라바키 감독의 영화<가버나움>은 실제 배우들이 난민을 표현하는 것은 힘들다는 생각에 나딘 라바키 감독은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의 길거리로 나갔고 그 곳에서 <가버나움>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아이들을 지나쳐버리기만 한다.
아이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 문제에 대해 알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들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들이 있는지 먼저 알고 싶었다.
- 나딘 라바키, 영화<가버나움>감독
영화의 오프닝처럼, 매 해 베이루트의 길거리로 나오는 아이들의 수는 늘어가지만 정작 불편한 현실을 대변하는 '아이들'을 방관하는 베이루트의 현실을 꼬집고 싶었다는 나딘 라바키 감독은 아무도 나서서 말하지 않는 베이루트의 현실을 그녀가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영화<가버나움>제작을 결정하였다. 영화제작초기 아무도 영화에 투자를 하지 않을 때엔, 그녀의 집 거실에서 다 펼쳐놓고 작업을 해야 했지만, 죽는 것보단 사는 게 낫다며 자신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모르겠다는 실제 난민 아이들의 말에서 시작된 영화<가버나움>을 포기할 순 없었다.
베이루트에서 배달일을 하다 캐스팅 디렉터의 눈에 띄어 캐스팅 됐다는 주인공 '자인' 역할의 소년 '자인 알 라피아'는 영화 속 '자인'과 흡사하게 실제로 열두 살의 시리아 난민 출신이며 그의 존재를 증명할 법적서류도 없었다. 즉, 영화 속 '자인'은 실제의 '자인'과 매우 닮아있는 설정으로 '자인'은 그 자신을 연기한 것과 같았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아이들을 부양할 능력도 없으면서 아이를 낳기만 하고 방관하는 부모를 고소한다는 설정에서 시작된
영화<가버나움>은 지금도 얼마나 많은 불쌍한 아이들이 그들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죄로 길거리에 나앉아 자신이 태어난 것을 원망하며 사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비단 레바논의 난민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자신이 아끼던 11살의 여동생 '사하르'가 팔려가듯 조혼을 하자 집을 나온 '자인'은 우연히 만난 한 청소부 '라힐'과 그녀의 딸'요나스'와 함께 지내게 된다. 그녀 역시 에티오피아 난민출신의 불법 체류자로 신분위장을 하며 홀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간다는 설정의 '라힐' 역시 실제 배우의 얘기이기도 하다. '라힐'을 연기한 배우 요르다노스 역시 불법 체류자로 살고 있었고 실제 난민들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영화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 이스라엘과 시리아를 국경으로 두고 있는 레바논은 많은 난민들이 발을 들이는 나라로 난민문제가 심각한 나라이다. 실제 '라힐'과 같은 불법 체류자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며 지금도 또 하나의 불안한 밤을 어딘가에서 숨죽여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이 불편한 현실을 끄집어내고 싶은 것이었을 것이다.
어느날 시장에 나갔다오겠다는 '라힐'이 불법체류자로 잡혀가자, 영문도 모른 채 요나스를 떠안게 된 라힐은 홀로 아이를 돌보다 결국 요나스를 좋은 집에 입양시켜주겠다는 불법브로커에 맡기고 더는 이 곳에서 살고 싶지 않았던 자인은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스웨덴으로 떠나고자 한다. 그러나, 떠나기 위해선 그의 존재를 입증하는 서류가 필요했던 자인은 집으로 돌아가 그의 출생조차 신고하지 않은 무책임한 부모에 분노하고 자신이 아끼던 여동생 사하르마저 잘못되었다는 비극적인 소식에 칼을 들고 달려가 자신의 여동생을 죽게 한 그를 칼로 찌르며 자인은 열두살의 나이에 학교 대신 교도소로 들어가게 된다.
애들을 돌보지 않는 부모가 지긋지긋해요.
사는 게 개똥 같아요. 내 신발보다 더 더러워요.
지옥 같은 삶이에요.
영화<가버나움> 속 자인의 대사 中
세상에 태어나면서 사는 게 지옥 같다는 것을 먼저 배우는 아이의 삶을 과연 우리들이 감히 상상할 수 있을까? 실제로 영화처럼 레바논에서 여러 일을 전전하며 살았다는 자인의 세상은 굳이 그가 말을 하지 않아도 그의 표정과 눈빛만으로도 느껴질 만큼 자인의 삶은 비참했을 것이다. 이런 여러 명의 '자인'을 세상으로, 길거리로 내몰고 방관하는 우리는 과연 어떤 어른인가? 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하는 영화 <가버나움>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