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四季)
'나는 아직도 새하얀 꿈을 꾸는가?' 묻고 싶었을 때
by
Sehy
Oct 19. 2024
잊지 못해요
그저 뒷모습을 지켜볼 뿐
그저 떠나가는 등을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으니
손을 놓고 있을 뿐
때로는 어떤 공허함이
등을 찌르는 듯이
아픔을 느낄 때도 있지만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라면
잘 가요,
예뻤던 어린 시절의 웃는 얼굴
아름다웠든 꾸밈없든 하얀 꿈이여
.
.
변해 가겠죠
이 길도, 나뭇잎도
나뭇잎 사이 비치는 햇빛만
받으며 살 순 없겠죠
시간의 흐름에 발을 맞추며
살아가야만 하겠죠
시간은 예쁘게 옷을 갈아입고
새로운 향기를 내뿜어요
나는 작은 길에 서서 홀로
머언 바다를 꿈꿔요
잘 가요,
내게 스며든 그 날, 그 사계절
몇 번이고 불러도 돌아오지 않을
.
.
잘 가요,
한때는 내 손을 잡아줬겠죠
부딪치며 괴로워했던 그 계절에
이제는,
떠나겠죠, 어딘가로 떠나겠죠
추억을 두 손 가득히 쥐고
아, 잘 가요
잡을 수 없는 새하얀 꿈이여
이제 난 바다내음이 나는 곳으로
세월의 부피가 커질수록 가는 속도에도 가속이 붙는 듯하다.
'벌써 올해도 많이 갔네' 하며 얇아진 남은 달력을 미련 남은 듯 만진다.
계절은 외투를 껴입었고 나는 무릎담요를 덮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책상엔 늘 헛헛한 맘을 달래주는 따뜻한 차 한 잔이 있다.
정말 엊그제까지도 '더워, 더워' 했는데 이젠 '추워, 추워' 하는 걸 보면
계절은 빨리도 돌아온다. 우리나라의 자랑인 '사계'의 이상적인 비율은
파괴된 듯싶지만 난 아직 가을의 끝자락에서 월동준비를 한다.
사실 난 겨울을 좋아한다. 11월생인 것도 있지만 겨울의 차분한 분위기가 좋고,
무엇보다 겨울 다음엔 봄이 온다는 문학적인 이유에서도 좋다.
영원히 내리는 비도 없듯, 영원히 이어지는 겨울도 없다.
그래서 내 몸도 마음도 '잘 부탁해' 하며 월동준비를 하고 겨울을 맞이한다.
그러고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떠올린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첫 문장.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설국'이란 소설의 문을 여는 첫 문장이듯, 시린 겨울을 닮았다.
겨울에 내 맘은 어느 기차 칸에서 종착지도 모르는 곳으로 달린다.
밤엔 별을 보다 창문에 기대어, 낮엔 누워 햇살을 맞으며 있을 것이다.
그러다 어둑어둑한 겨울의 긴 터널을 버텨내고 새하얀 빛이 보이기 시작하면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겨울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겨우 새하얀 꿈에 닿았다고
keyword
가요
뒷모습
Brunch Book
to go with my mood
13
그대라 부르는 계절
14
방명록
15
사계(四季)
16
정적의 노래
17
epilogue. 겨울개화
to go with my mood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17화)
이전 14화
방명록
정적의 노래
다음 1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