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生을 부모가 빼앗을 수 없다.
'처녀들, 자살하다'
제목의 울림만으로도 가슴이 묵직해진다.
1999년 소피아 코폴라의 장편 감독 데뷔작 영화<처녀 자살 소동(The Virgin Suicides>는
1993년 제프리 유지니데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며, 원작 내용을 충실히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그날 아침은 리즈번가에 남은 마지막 딸이 자살할 차례였다
범상찮은 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본 소설은 13살 막내 세실리아의 자살 시도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리즈번씨와 도서관 사서 같은 리즈번 부인, 그리고 동네 남자아이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다섯 딸들, 연년생으로 막내 세실리아, 럭스(커스틴 던스트 役), 보니, 메리 그리고 맏이 테레즈.
항상 밝은 햇살만 받으며 싱그러운 미소만 짓고 살면 될 것 같은 나이에
어째서 햇살보단 그늘 아래서 오래 머물길 택한 건지
왜 기어코 세실리아는 언니들 손에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건지
동네 아주머니들은 저마다의 추측대로 수군거리고,
동네 남자애들은 비뚤어진 동경으로 이야기를 지어낸다.
"그 애는 죽을 생각이 없었어. 그 집에서 그저 나오고 싶었던 거지.
겉보기에만 그럴듯한 가족한테서 나오고 싶었던 거야."
막내 세실리아의 죽음 이후, 부모님은 세상과 네 딸들을 단절시키고 학교도 무기한 가지 못하게 한다.
집이지만 숨도 쉬기 힘든 곳, 문만 열면 쬐는 햇살도 닿지 않는 집 안. 창문까지 막아버려 바깥세상조차 꿈꿀 수 없는 집 안에서 십 대의 네 딸들은, 동네의 남자애들이 보기에 싱그러운 꽃봉오리처럼 보였던 네 딸들은 그렇게 집 안에서 조용히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막내의 뒤를 따라가는 것뿐이었다.
"아가, 여기서 뭐 하는 게냐?
너는 사는 게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 알만한 나이도 아니잖니
.
.
선생님은 열세 살짜리 소녀가 돼 본 적이 없잖아요"
처음 세실리아가 자살시도로 병원에 실려왔을 때 의사가 말했다. 네 나이면 별 고민도 없을 나이인데
왜 이런 선택을 했냐고. 하지만 어느 연령대의 누구에게나 남들이 차마 헤아리지 못할 일이란 있는 법이다.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사람의 가슴속에선 뭔가가 부르짖고 있는지 제삼자가 봤을 땐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린 타인을 함부로 단정지어선 안될 것이다.
원작도 그리고 영화도 모두 제삼자의 추측에서만 그들을 바라볼 뿐, 명징하게 그녀들이 이런 이유로 스스로
어두운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그녀들의 선택의 이유는 오롯이 그녀들만이 붙들고 있다.
부모가 가두려고 했던 파릇파릇한 생을, 결국 그녀들은 생(生)도, 사(死)도 그녀들의 것임을 죽음으로써 지켜낼 수밖에 없었다.
<낙원>
안녕, 햇빛아
넌 오늘 어떠니?
넌 괜찮길 바라
그런데 말이야
어딘가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어딘가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그런데 말이야
넌 뭘 숨기고 있는 거니?
.
.
안녕, 바람아
넌 오늘 어떠니?
자유로이 떠다니니?
왠지 말이야
이 나른한 오후에
긴 긴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
이 나른한 오후라면
긴 긴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
.
.
혹시 들어본 적 있니?
저기 어딘가에 ‘낙원’이 있대
넌 뭐든 될 수 있고
넌 뭐든 할 수 있는 곳
마침내, 넌 자유야
마침내, 난
마침내, 난
마침내, 난 날 수 있어
.
.
잘 자요, 당신은
좋은 꿈을 꿔요
당신은 몽상가잖아
그래서 당신은
아직도 주먹을
꼭 쥐고 있나 봐
희망을 꿈꾸는 거야
하지만, 난 방금
어딘가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어딘가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당신은 듣지 못했나요?
아무것도 듣지 못했나요?
그런데, 당신은
지금 왜 울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