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에 대하여
나이가 들면 내 몫의 삶의 해답 한 가지라도 더 얻을 줄 알았는데,
삼십여 년을 산 나의 손바닥 안에 있는 것은 민들레 홑씨 같은 여린 것.
'삶이란 네가 생각하는 만큼 무겁지만은 않아.'라며 날 쳐다본다. 불면 날아갈 것 같이 가볍다.
사는 동안은 해야 하는 삶에 대한 고민은 좀 내려두려 하면 고양이처럼 내 몸을 타고 올라온다.
하지만 내 삶을 뭘 봐야 알 수 있나. 거울을 보면 되려나.
거울을 보면 갑갑한 모양의 내가 우두커니 있을 뿐이다.
그럴 때 삶에 대한 책을 하나씩 꺼내본다. 이번에 본 책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25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인 만큼 워낙 아는 사람도 많을 테니
내가 많은 설명을 보탤 이유도 없을 것 같다. '의미치료'를 연구했던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이
1945년 나치 수용소에 끌려가 그곳에서 3년 동안 삶과 죽음의 적나라함을 몸으로 깨우친 것에 대한 기록이다.
이론적으로만 연구했던 '의미치료'와 이론 너머에서 벌어지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수용소.
그곳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담배 불과 함께 태워 꺼버리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손이 아리는 얼음장 같은 곳에서도 자신의 삶을 지키려 애썼다.
그리고 저자인 빅터 프랭클도 매일같이 사람들이 죽어나가지만 수용소 벽 너머를 바라보며 삶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그에겐 이곳에서 자신이 연구하던 '의미치료'애 있어 날 것으로 습득한 것을 꼭 책으로 써야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세상의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그의 책을 대신 써줄 수 있는 사람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흔히들 책 한 권으로 비유하는 자신의 삶은 어떤가?
저자는 삶을 끝까지 붙드는 자와 놓아버리는 자의 차이는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스스로 아는가에 대한 차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 할 수 있다면 생존에 대한 책임도 함게 붙들고 있는 것이기에
쉽게 던져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삶이 수용소 안에서 연기처럼 끝나느냐,
밖에서도 이어지느냐의 차이로 이어졌다.
같은 공간에서도 누군가는 죽음을 바라보고 죽음 너머의 하늘을 바라본다.
삶도 같은 것이 아닐까? 지금 현재의 삶이 매우 고통스러울 수 있다.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삶이 어디에서 끝나며, 어느 만큼 와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 몫의 삶이란 바로 여기 있고,
내 인생에서 해야 할 몫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삶도 나름의 계획이 있다고 한다.
삶은 항상 살아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도 죽은 자처럼 살지 말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은 내가 되도록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내 삶이 지금 겨울에 있다면 그 겨울도 나의 계절이니. 분명 겨울을 녹이는 해는 매일 아침 뜨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