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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재의 Mar 30. 2020

퇴사보다 어려운 건 퇴사 결심

어려운 걸 끝냈으니, 퇴사를 해보자

퇴사를 결심했다.

회사를 다닌 지 1년 하고도 5개월 만이다. 예정 퇴사일은 1월 31일. 마음먹은 날을 기준으로 딱 180일 뒤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맞이한 나의 첫 회사, 첫 사회생활. 이제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이나 매일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 아닌 퇴사를 준비하는 '퇴준생'이 된 셈이다.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마치고, 회사 생활을 제대로 정리할 시간을 포함하여 퇴사일은 넉넉히 1월 31일로 정했다. 더 나은 퇴사 라이프를 위해 그동안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정리하며 퇴사 일기를 써보려고 한다. 


사회초년생은 어딜 가든 힘들다지만

내 사회생활은 왜 이렇게 고될까? 생각했다. 사회생활은 단순히 일을 하고 그에 상응하는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를 맺어가고 그들이 원하는 사회초년생, 막내의 모습도 보여주어야 하며 회사에게는 나를 고용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이해시키는 시간이었다. 왜 노동이 아닌 '사회'생활이라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됐다.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일을 잘한다고 평가받았던 터라 사실 일에 있어서 막연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끝내 내가 못해낼 거란 생각은 크게 안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회사에 출근을 하고 보니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 잘하는 게 아니었다는 거다. 대학 졸업 전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미숙했던 부분도 많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에 조금이라도 일이 안 풀린다 싶으면 기가 죽었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대하는 직업인만큼 소모되는 에너지도 엄청났다. 처음 회사에 다니고 한두 달 정도는 카톡을 잘 안 봤던 것 같다. 


광고요? 힘들지만 그래도 재미있어요.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분명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나는 어떤 일이든 성취가 가장 중요했다. 재미있게 일했다면 힘들어도 괜찮았다. 광고 일은 늘 고되지만 그에 상응하는 크고 작은 성취를 갖다 주었고,  이러한 경험이 쌓여 내가 다음에 하게 될 일이 얼마나 고될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성취로 돌아오리라 믿었다. 어딜 가나 힘든 일은 있다고, 나만 힘든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지치고 어떤 것에도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의 상태가 되면서 '업'으로서의 광고가 지금 당장 성취를 주진 못하고 있다. 그래도 난 여전히 광고가 좋다. 마케팅이 좋고 다른 잘한 마케팅들을 보면서 짜릿함을 느낀다. 회사 일에 많이 지쳤지만 그래도 퇴사 후 적어도 분야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호흡하기

회사에 있는 시간은 물론이고 혼자 있는 시간,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까지도 제대로 숨 쉰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평일에는 잦은 야근 때문에 회사와 잠자는 시간뿐이었고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면 '대체 바쁜 건 언제 끝나?'라는 질문을 받았다. 거기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싫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면 회사로 인해 나의 스물다섯이 얼마나 망가졌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모처럼 갖는 휴일에는 지쳤다는 핑계로 어떠한 일도 하고 싶지 않아 지면서 스스로 합리화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매서운 한파를 지나 한여름이 된 지금까지, 좋든 싫든 올해 단 하루도 회사를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힘들어하는 나를 보면서 주변에서는 당장 관두라고 말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게 뭐라고 나는 놓지를 못했다.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며, 2년을 다 채워야만 지금까지의 노고가 다른 곳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을 하면서 잘한다는 소리를 꽤 들었던 터라 지금 이제 막 속력을 낸 만큼 가속도를 내고 싶었다. 갑자기 멈추는 건 막연한 두려움이 되었다. 극단적으로는 이 시간을 모두 버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력은 충분하다고 생각(자만 다소 포함되어있음)되는데 다른 곳에 가서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 생초보 대우를 받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생한 시간을 모두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잃어버린 것만같은 스물다섯의 일년'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있었을까?실력이 나쁘지 않은 경력자로 대우받는 것일까? 일로 인해 생활이 완전히 흔들려 버린 지금, 단순히 '인정받음'이 보상이 될 수 없었다. 초보딱지를 뗀 괜찮은 경력자가 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챌린지가 다시 찾아올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명확하지 않은 보상을 바라며 보상심리를 작동시켰으니 어떤 것이 오더라도 나에게 큰 만족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치열하게 속력을 내는 순간

단거리 선수들은 더 빠르게 달리기 위해 무호흡으로 달린다고 한다.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짧고 강한 에너지를 분출해야 하기 때문에 무산소 운동에 속한다. 조급하게 달리는 내 모습이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무산소로 달리는 길이가 길어지면서 한계를 느낀 것이다. 

인생은 단거리가 아니다. 속도도 중요하지만 더 길고 멀리, 꾸준히 가기 위해선 호흡을 조절해야 한다. 내가 가진 에너지를 적절하게 분배해야 한다. 정신없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사회생활 속에서 도저히 내 호흡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회사를 관두고 잠시 멈춰서 앞으로 호흡을 가다듬으려 한다. 

후-하, 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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