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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재의 Jun 01. 2020

코로나 19에 대처하는 퇴사자의 자세

Feat. 세 번의 발리행 항공편 취소

 내 나이 또래의 많은 퇴사자들은 아마 '퇴사 여행'을 꿈꿀 것이다.

 갑갑한 생활 속에서 벗어나 잠시 떠나는 짧은 휴가 같은 여행이 아닌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니. 여행은 나에게 언제나 큰 해방감을 선사했으므로, 무려 [퇴사] 여행은 일전 여행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균형과 포용의 도시 발리.

 퇴사를 마음먹은 이후로 나는 꼭 발리에 가겠다고 결심했다. 건강한 액티비티들과 드넓은 자연,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는 곳.  채움보다 비움, 힘 주기보다 힘 빼는 유연함을 배울 수 있는 곳. 게다가 여행지를 물색하면서 봤던 문장이 충격적이었다.


'발리인을 가장 잘 설명하는 키워드로 꼽는 것은 '균형'입니다. 여기서 균형이란 외부 자극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자신의 것을 지킬 줄 아는 감각을 뜻합니다. 그 감각은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힘을 기른 사람만이 누릴 수 있죠. 발리 사람들은 불가항력에 속하는 자연과 종교적 영향으로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것에 훈련되어 있습니다. 오로지 외부 자극이 이끄는 방향에만 집중하던 도시인이 발리에서 새로움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러한 부분입니다. 나의 몸과 마음을 어떠한 방향성도 없는 영점으로 되돌리면서 도리어 무게중심을 되찾는 것이죠.'

 -매거진B '발리'편 중-

매거진 B의 발리 편은 조심히 읽어야 한다. 당장 발리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흔들림 속에서 균형을 잡아가는데 익숙하다니, 얼마나 멋진 말인가? 이곳에 가면 혼란스러운 마음 가운데서 나의 중심을 잡아가는 방법을 체화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회사를 다니며 뭉친 2년 간의 근육통들을 풀어나갈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다. 발리에 관련한 많은 블로그와 여행기를 읽었고, 생전 사지 않던 잡지도 구매했다.


발리 한 번 가는데 비행기 표 세 번 발권

 일이 아주 많던 2019년 12월의 어느 날 홧김에 2020년 1월 8일 출국 일정으로 티켓을 끊었다. 그러나 퇴사 일정 협의 실패로 무산되었다. 생각보다 회사에서 놓아주지 않아 당혹스러웠지만,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준비하는 것으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저렴하게 구매했던 항공권은 결국 수수료와 함께 시세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이 되었다.

 퇴사 일정 협의가 완료된 후에 2020년 2월 18일 일정으로 두 번째 발권을 했다. 발권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 19가 터졌다. 처음엔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았으나 상황이 점점 심각해졌다.  하필이면 비행기 편도 중국 항공, 중국 경유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웃겼다. 온 세상이 내가 발리에 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 같았다. 그래, 상황이 진정되면 가자. 두 번째 항공표도 취소했다.  다행히 비행기는 무료 취소, 숙박은 일정 변경으로 수수료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쯤 되니 독기가 올랐다. 무엇이든 뚫는 창과 무엇이든 막는 방패의 대결 같은 느낌이었다. 남는 게 시간, 나는 어떻게 해서든 발리에 가겠다고 결심했다. 한 달이나 더 늦은 일정인 3월 18일 초 최종 발권을 했다. 원래 30일 가려했던 여행은 밀린 만큼 50일로 일정을 변경했다. 와중에 이미 두 번의 취소로 인해 다소 움츠러들어 우선 편도로만 발권했다. 숙소도 기존 예약해놓았던 곳을 제외하고 10박 정도만, 무료 취소 가능한 곳으로 예약했다.

취소될 가능성을 너무 열어두었던 것일까... 급속도로 증가한 국내 코로나 확진자와 인도네시아 내 확진자 발생으로 결국 세 번째마저 취소하게 되었다.


세 번째 취소했을 때. 아, 내 마음에도 화산이 터졌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란 무엇일까

 확실히 지금은 우리나라가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출국 10일 전까지도 오기를 부리며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도 가는 게 맞는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지금껏 어떠한 결정에도 반대하지 않던 엄마와 친구들의 걱정으로 결국 포기했다.

ㅡ이 와중에도 아빠는 위험성을 판단하는 것조차 나의 몫이라며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ㅡ

 첫 번째, 두 번째까지는 속상했지만 금세 멘탈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 번째는 정말로 심란했다. 왜 나는 퇴사도, 퇴사 여행도 쉽지 않은 걸까? 사실 발리에 가면 죽을 운명이라 온 세계가 나를 말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익히기 위해 가려했던 발리가 오히려 더 큰 혼란을 가져온 것이다. 올해 조급해하지 말자고 다짐해놓고, 당장 여행을 가지 못해서 조급해하는 내 모습을 조금 떨어져서 보고 나니 머리가 차가워졌다.

 지난 2년간 숱한 야근과 예측할 수 없는 업무의 홍수 속에서 상황에 어떻게든 적응하며 내 몫을 정리해나갔더랬다. 어쩌면 나는 이미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잘 잡았던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발리도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하면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당장 지금이 아니면 안 될 이유도 없었다. 언제고 상황은 바뀔 수 있고 계획이 틀어질 수 있다. 그럼 다시 차근히 계획을 세우면 되는 거다. 나는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계획이 없었으니 틀어지는 일도, 망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영화 <기생충>에서도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라고 했다.

 퇴사 후 그간 고생했던 시간과 노력을 더 큰 행복으로 보상받고자 했다. 지금 나에게 행복은 안정을 누리는 것. 아침에 눈뜨고 늦은 밤 잠들기 전까지의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 나의 행복이 더 안전할 수 있도록 침착함을 잃지 않고 언제든 다시 중심을 잡아가는 것. 그것이 초연함에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그건 그 나름대로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변곡선을 그리는 삶의 연속에서 나는 초연해지고 의연해지겠다고 다시 한번 더 다짐한다.


 그리고 발리는 언젠가 꼭꼭- 한 달 살기 하러 가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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