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이 무더웠던 여름, 군 시절 분대장 훈련을 받던 때가 있었다. 사단 내 경쟁을 통해 입상한 분대에게는 포상휴가가 주어지는 훈련이었다. 여러 평가 항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독도법 훈련이었다.
각 분대는 부대 밖 작전지역으로 이동하여 완전무장 상태로 좌표 몇 개가 표시된 지도를 받았다. 해당 좌표의 실제 장소마다 각기 다른 표식이 숨겨져 있었고, 분대는 제한된 시간 안에 그 표식을 찾아내어 그대로 따라 그려오는 것이었다. 가장 많은 표식을 확보한 분대가 1등을 차지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나름 독도법에 자신이 있었고, 분대원들과 함께 하나하나 표식을 확보해나갔다. 그러나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완전 무장 상태로 이동하는 것은 우리를 지치게 했다. 마지막 하나의 좌표만 남았을 때, 우리가 1등이 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이동하면 시간이 부족할 것이 분명했다.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한 가지 수를 생각해냈다.
제일 날렵한 후임을 무장해제 시키고, 그 좌표까지 뛰어가게 했다. 남은 우리는 그 장소로 이동하는 동시에 지나가는 민간인 트럭을 잡아 후임을 픽업 후 부대로 복귀할 계획이었다.
저 멀리 뛰어가는 후임과 반대 방향으로 레토나 한 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지휘관이었다. 지휘관은 분대장이었던 나에게 무슨 상황인지 물었다. 설명을 듣던 지휘관이 외쳤던 몇 마디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너 이 자식, 넌 전시 상황에서 네 분대원을 무장해제 시킨 거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거야! 훈련이 장난이야? 네가 아무리 좋은 결과를 가져와도 점수를 줄 수 없어!”
잠시 멍한 상태로 있던 사이, 무장해제를 시켰던 후임이 도착했고, 우리는 분대원들과 부대로 복귀했다. "뭐 이런 걸로 분대장을 나무라냐"는 후임들의 위로도 있었지만, 나는 애써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포상휴가는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대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우리에게 상을 주었다. 포상휴가였다. 잠깐의 기쁨 뒤로 수치심이 밀려왔다. 별것 아닌 훈련이라고 생각했지만, 전시 상황에서 분대원을 무장해제시킨 분대장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조용히 넘어가거나 혼나기는커녕 상을 주다니, 수치스러웠다. 그때 상을 받지 못했다면 이 에피소드는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매일 이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프로젝트를 앞두거나 리더십에 대해 고민할 때면 이 독도법 훈련이 매번 다른 버전으로 떠오른다. 이 때문인지, 시장에는 승자와 패자만 있고 누군가의 희생이 필수불가결한 프레임과는 맞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해온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름의 철학이 생겼다. 내가 성공했다고 말할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그런 날이 오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희생시켜 무엇을 얻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수치심 이후로 20년을 더 살아보니 게임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더라.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빛과 시간의 흐름을 통해 루앙 대성당의 끊임없는 변화를 표현한 모네, 우리 인생의 길고 긴 과정을 설명해주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