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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YEU Weekly

후회하지 않는 선택들

계획보다 감각을, 확신보다 가능성을

by 정진

독립 이후 5달이 되어간다. 요즘은 지난 18년 간 이어온 흐름들이 하나의 축적된 자산처럼 응축되면서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리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이번 주에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스타트업 공동창업자와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이 회사는 지금 내가 하는 비즈니스의 중요한 파트너이자, 우리가 설계 중인 구조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곳이다.


그는 나보다 한참 선배다. 오랜 시간 금융권에서 경력을 쌓았고, 미국과 홍콩, 그리고 한국을 거치며 치열하게 일해온 분이다. 이제는 다시 홍콩을 근거지로 삼아 사업을 이어갈 계획이고, 한국을 잠시 방문한 틈을 타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일 이야기는 잠깐, 대부분의 시간은 자녀교육부터 서로의 개인사, 인생의 선택에 관한 대화였다. 나로서는 깊이 와닿는 조언들이 많았다. 그의 메시지를 종합적으로 요약하자면, ‘후회하지 않는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최근 미국에서 크립토 벤처캐피탈 팀을 만나 미국 내 가상자산 시장의 큰 흐름을 직접 들으면서, 익숙한 영역을 넘어 새로운 방향에 도전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됐다. 그 이야기를 선배에게 털어놓으며, 예전 증권사 IB 시절이나 PE에서 크로스보더 딜을 다루며 느꼈던 막연한 불안감과 가능성 사이의 갈등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 선배가 해준 말이 인상 깊었다.


"항상 나도 그 질문과 싸워왔어요."


의외였다. 큰 갈등 없이 성공적인 커리어로 흘러왔을 거라 상상했던 그였다. 그는 자신의 삶을 하나하나 짚어주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했을 때에는, 유학을 갈 수 있을까 고민했고, 유학을 가서는 대학원 졸업이 가능할까를 또 고민했고, 졸업 후 미국에서 취업할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 미국에서 일하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땐 내가 이곳에서 정말 자리잡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또 던졌다고 한다. 현지 취업이 되어 블룸버그에서 일하던 시절엔 CFA를 취득하고 안정적인 커리어를 이어가던 중, 플로리다 소재의 헤지펀드에서 오퍼가 왔고 면접까지 봤지만 결국은 거절했다. 이후에는 블룸버그 홍콩으로 발령을 받아 그곳에서 둘째 아이를 낳았고, 지금의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삶은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부분 "Yes"라고 대답해온 시간들이었다고 한다. 유일한 "No"는 그 플로리다의 제안을 거절했던 순간뿐이라고 했다.


그가 강조한 말이 있다.


“기회를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게 진짜 기회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Yes라고 말하는 거라 생각해요. 돌아보면 대단한 뭔가는 없었지만, 후회하지 않는 선택들을 하려고 했던 거죠.”


Yes man, Jim Carrey 출처: hollywoodreporter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나 역시 대부분의 선택에서 Yes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큰 그림보다는 하루하루에 집중했고, 실패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방향을 택하려 했다. ‘Serendipity’라는 단어를 좋아했고, 우연히 오는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살았다. 가끔은 지금 이걸 해도 될까,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다.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자고. 그게 결국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준 방향이었다는 걸 말이다.


그와 대화는 짧지 않았지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후회하지 않기 위한 선택, 그 단순하지만 묵직한 기준을 실천해온 한 사람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이 공간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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