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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 Oct 26. 2022

자본조달 의사결정 시 생각해봐야 할 몇 가지

 자본조달의 순서, 그리고 스타트업 대출에 대한 생각

바둑에서 ‘복기’는 경기가 끝나고 다시 처음부터 판국을 두었던 대로 놓아보는 과정이다.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 준다는 바둑계의 전설 이창호9단의 명언도 있다.


투자에서도, 사업 의사결정에서도 복기는 중요하다. 수년 전 나의 뼈아픈 경험을 복기를 통해 이번 칼럼으로 가져와봤다. 리테일 비즈니스를 영위하던 A사는 마진율이 크지 않았지만 양(+)의 현금흐름이 생성되고 있었다. 과거 투자유치도 일부 하였지만 빠른 사업 확장을 위해 상대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유상증자를 통한 투자유치보다 당장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지인의 회사로부터 자금을 차입하였다. 이 회사를 검토할 당시 나는 창업한지 얼마 안된 기업이 차입금수준이 높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회사는 차입금 이자를 감당하면서 수익을 내고 있었고, 사업 전망이 밝았다. 지금 투자를 한다면 성장속도를 높여 충분히 다음 투자유치를 통해 차입금을 상환하고 재무구조 개선을 통한 추가적인 성장을 도모해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투자 이후 기대 대비 회사의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시장환경이 지속되었고, 이 때부터 회사의 대출 이자가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높은 부채비율이 후속투자 유치에 상당 부분 장애요인이 되었다. 회사의 재무구조가 성장성을 잠식하고 있던 것이다. 이대로 두면 회사의 지속성을 장담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올 것 같아 채권자에게 대출금을 주식으로의 전환(출자전환)을 요청하였지만 조건 협의가 힘들었다. 이런 악순환은 상당 기간 계속되었다.


투자 의사결정 당시를 복기해봤다. 내가 작성한 Investment Highlight 한 줄 한 줄이 그 당시의 근거였다. 유망한 산업이었고, 후속투자 가능성이 높았으며 무엇보다 창업자가 지닌 열정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사업이 어려워져도 조금만 도와주면 피보팅 기회가 있을 거라 판단했다. 재무구조로 인한 리스크 판단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투자 의사결정을 하였다. 


이 복기를 통해 아래의 투자원칙을 추가하였다.


1)  투자 검토 시점 재무상태 (차입금 비율, 주주구성 등)에 의사결정 비중을 더 둘 것임

2)  후속투자 성공 가능성이 투자의사결정 요인이 될 수 없음


Pecking Order Theory 라는 이론에 따르면 재무관리자는 투자자에게 부정적 시그널을 보낼 가능성이 가장 적은 자금 조달 방식을 선호한다. 내부적으로 창출한 자본을 가장 선호하고, 그 다음은 부채가 차선책이며, 유상 증자 방식의 외부 자본이 가장 선호되지 않는 자금조달 옵션이다. 꽤나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투자유치(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투자자에게 ‘미래의 이익을 공유하는 행위’와 같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의지치를 제외하고 객관적으로 미래의 이익에 대한 확신이 든다면 먼저 내 돈으로 투자를 하고, 그 다음 부채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이론은 기업의 생애주기로 따지면 성숙기 이상의 기업에 해당되는 내용일 수 있다. 스타트업의 경우 부채 조달에 대해 조금 더 신중한 판단을 요한다. 창업자도 부채를 통한 자금조달을 할 경우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해 조금 더 보수적인 비중을 두고 의사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부채로 자금 조달이 불가피하거나 매력적인 조건으로 조달이 가능할 경우 최대한 채권자와 협의하여 사전에 출자전환 약정 대한 내용을 꼭 넣었으면 좋겠다.


부채를 통한 자금조달은 꼭 피해야만 할까? 아니다. 내가 독자 여러분께 공유하고 싶은 케이스는 바로 ‘애플’이다. 


<애플의 5개년 주가추이>

Source: Yahoo Finance


제로금리 환경에 따라 애플은 2013년 첫 번째 채권 발행(부채로 현금 조달)을 시작으로 꾸준히 채권을 발행해왔다. 애플이 돈을 필요로 했다기보다는, 애플의 신용으로 공짜 현금(제로금리)을 끌어 모은 셈이다. 애플의 장기부채는 2016년 $73.55bn에서 2021년 $106.62bn으로 증가했다. 부채비율(부채/자본)역시 2016년 56%에서 2021년 148%로 증가했다. 부채만 증가한 것이 아니고 애플의 현금 보유량 또한 함께 늘어났다. 애플은 2021년 말 $62bn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하였고, 현금 외 시장성 있는 유가증권을 포함한다면 $172.6bn으로 실제로 부채 비율 자체가 의미 없는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애플은 이렇게 조달한 현금으로 수익화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에 투자를 하거나, M&A를 하거나, 자사주를 매입하여 주주가치를 제고하는데 사용하였다. 애플의 경영진은 애플의 브랜드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프로젝트(신형 아이폰, M1 Ultra 출시 등)의 수익성에 대한 합리적인 확신을 하고 있었을 수 있다. 이런 확신을 기반으로 부채비율이 높은 재무구조를 선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프로젝트에서 생긴 상당한 수익 및 부가가치를 채권자에게는 극히 일부분만 나눠줬고, 대부분 회사와 주주들에게(배당+자본차익-Capital gain)으로 돌려줬다.


그렇다면 이렇게 낮은 금리의 애플 채권을 누가, 왜 살까? 개인 입장에서 2-3%의 수익률의 금융상품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수십, 수백조원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안전자산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포인트는 기관투자자는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을 혼합하여 투자하지 결코 한 가지 자산에 All-in 하는 경우는 없다. 국채, 애플 채권 같은 안정성 있는 자산이 내 포트폴리오에 있어야 나머지 자금으로 위험한 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기관투자자는 나름의 돈의 꼬리표를 가지고 있고 다양한 금융상품과 연결이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나를 포함한 금융시장 참여자들, 그리고 정책자금 대출기관도 스타트업 대출의 올바른 조건에 대한 부분을 고민해봐야 한다. 전통적인 기업대출 프레임으로 스타트업 대출에 접근하기 보다, 조금 더 위기상황 시 상호 간 합의점을 도출할 기회를 제공하는 탄력적인 조건은 무엇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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