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산업의 재편(1)

글로벌 패션 기업들은 왜 AI를 경영의 중심에 두는가

by 정진

지난 13일 섬유산업연합회 '데이터·AI 활용 전략 & 트렌드 세미나'에서 발표했던 내용을 몇 차례에 걸쳐 나눠보려 한다.


패션 산업은 지금 누구나 피부로 느끼는 급격한 변화를 지나고 있다. 감성 산업이라 불렸던 패션이 이제 기술을 중심으로 다시 짜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는 방식, 유통 채널이 소비자를 만나는 구조, 브랜드 메시지가 전달되는 경로까지 많은 것들이 재정의되는 시기를 맞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의 중심에는 AI가 있다.


이 변화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다. 산업의 핵심이 바뀌는 구조적 변화가 아닐까 싶다. 과거에는 브랜드 디렉터의 직관이 강력한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데이터 기반의 판단이 그 직관을 정교하게 보완하거나 때로는 대체하기도 한다. 고객의 구매 의사결정 과정도 변화하고 있다. 검색창에서 정보를 찾고, SNS에서 취향을 탐색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AI에게 직접 질문하고 비교하며 추천을 받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브랜드를 발견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 패션은 이 변화의 가장 앞쪽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 위탁판매 중심의 구조는 브랜드가 재고 리스크를 떠안게 만드는 근본적 문제를 가진다. 여기에 더해 마케팅 비용은 계속 상승하고, 고객의 주목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네이버·무신사·구글·인스타그램 어느 곳에서도 유료 광고 없이는 자연 노출이 쉽지 않은 환경이 되었고, 브랜드의 표현 방식은 끊임없이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경쟁해야 한다. 그 결과,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운 시장 구조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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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경에서 AI는 산업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기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AI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고객을 더 정교하게 이해하게 만들며, 브랜드가 가진 자산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게 만들어준다. 이 점은 글로벌 패션 기업들의 움직임에서 더 명확하게 보인다.


LVMH: 기술을 드러내지 않지만, 고객 경험의 바닥부터 AI로 다시 깐다

럭셔리 시장은 전통적으로 기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고객이 느끼는 경험의 순도를 유지하기 위해 기술은 늘 뒤에서 조용히 작동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LVMH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매우 공격적으로 AI 기반 구조를 도입해왔다. 이 전략을 이들은 Quiet AI 라고 부른다. 그 접근이 흥미로운 이유는, 기술을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고객 이해의 정교함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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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MH는 2025 LVMH Innovation Award Best Business Prize를 수상한 Kahoona라는 AI 솔루션을 도입했다. 이 기술의 핵심은 로그인하지 않은 ‘익명 고객’의 행동 패턴만으로 구매 가능성과 취향을 예측해낸다는 점이다. 쿠키 없이도 개인화된 추천을 제공할 수 있어, 데이터 규제가 강화되는 환경에서도 브랜드가 고객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온라인 방문자의 클릭 순서, 체류 시간, 상품 간 이동 경로, 장바구니 조작 행태 등이 실시간으로 분석되고, 그에 맞춰 제품 추천과 콘텐츠 노출이 달라진다. 현재 Dior 홈페이지에 적용이 되어 익명의 고객에게도 VIP 같은 세심한 배려를 전달하려 노력한다.


이 변화는 고객이 이 브랜드는 나를 이해한다는 감각을 더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만든다. AI는 단순히 정보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선호할만한 문장과 이미지 톤까지 자동으로 조정한다. 프라이버시 논란을 피해가면서도 고객 경험의 질을 유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럭셔리 시장에서 특히 유효하다. 기술이 브랜드의 감성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강화하는 방식으로 도입되었다는 점이 LVMH 사례가 주는 가장 중요한 인사이트다.


Nike: AI를 브랜드 운영의 중심축에 둔 기업

나이키는 기술에 대한 감각이 유난히 빠른 기업이다. 운영 자체를 AI 기반으로 재설계하기 위해 노력해온 기업이다. 그 상징적인 행보가 바로 AI 기업 세 곳을 인수한 것이다. Celect, Zodiac, Invertex. 각각의 기술은 기능적으로 분리되어 보이지만, 나이키는 이를 브랜드 운영 전 과정과 연결해 하나의 시스템처럼 작동하게 만들었다.


Celect의 기술은 재고 전략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SKU 단위의 수요 예측을 통해, 어느 지역에서 어떤 제품이 어떤 속도로 팔릴지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판매 데이터를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 날씨 변화나 로컬 이벤트, 고객의 흥미 집중 구간까지 반영된 ‘확률 기반 예측’이 가능해졌다. 이 예측은 생산량과 발주 시점, 물류 배치까지 모두 영향을 미친다. 나이키의 재고 회전일수가 단축된 이유는 감이 아니라 구조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Zodiac은 고객의 생애가치를 예측하는 모델을 제공한다. 단발성 구매가 아니라 앞으로 몇 년간 어떤 상품군을 어떤 빈도로 구매할 확률이 높은지 계산한다. 이를 통해 마케팅 비용이 더 높은 효율을 갖게 된다. 과거에는 매출 기여도가 높은 고객군을 ‘과거 구매 실적’으로 판단했다면, 이제는 ‘미래 기여도’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용되지 않는 예산을 줄이고, 진짜 필요한 곳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Invertex는 ‘핏’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3D 스캔 기반 기술이다. 고객은 스마트폰 하나로 자신의 발을 스캔할 수 있다. AI는 발 모양을 분석해 어떤 제품이 가장 잘 맞을지 추천한다. 이는 반품률 감소와 구매 만족도 향상으로 직결된다. 의류보다 신발에서 더 중요한 요소가 바로 ‘사이즈와 핏’인데, 이 문제를 기술로 해결함으로써 나이키는 고객 경험에서 가장 큰 장애물을 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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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기술은 결국 하나의 목적을 위해 쓰인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생산, 물류, 판매, 고객 응대까지 모든 단계가 단절 없이 연결되며, 각각의 단계에서 발생하는 의사결정이 더 정밀해진다. 나이키가 AI를 활용해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운영의 일관성’과 ‘고객 경험의 안정성’이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서 브랜드 전반의 속도와 효율성이 극적으로 향상된다.


Screenshot 2025-11-29 093632.png 출처: WSJ

한국 패션은 늘 빠른 순환 속도를 강점으로 삼아왔지만, 이제 그 속도가 오히려 리스크가 되고 있다. 트렌드가 빨라질수록 재고의 압박은 커지고, 마케팅 비용은 더 오르기 때문이다. 브랜드는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대응해야 한다. AI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직접적 수단이다.


기획 단계에서 AI는 트렌드 조짐을 더 빠르게 읽어내고, 디자인 방향성을 더 명확하게 잡아준다. 생산 단계에서는 발주를 세분화하고 리드타임을 단축시키며, 불필요한 과잉 생산을 줄인다. 유통 단계에서는 SKU별 배치와 재고 이동을 최적화한다. 고객 경험에서는 더 정확한 추천을 제공하고, 개인의 맥락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될 때, 브랜드의 생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결국 AI는 패션의 감성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감성의 방향을 더 정확하게 제시하는 기술이다. 브랜드가 스스로를 얼마나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는지, 그리고 고객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가 AI 적용의 성패를 결정한다. 기술의 시대이지만, 브랜드의 핵심은 여전히 사람이다. 다만 그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을 뿐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AI를 어떻게 나와 고객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지,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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